사회 사회일반

[이야기가 있는 미술] 모호한 설정·암시의 의미는?

■ '패션 사진의 거장' 기 부르댕 전시회<br>흰 살결과 대조를 이루는 빨간색… 침대위에 놓인 작은 코끼리 인형…<br>기존 상업사진 틀 깬 작품들 70년대말 시각 예술계 흔들어<br>아시아지역 첫 공개작 등 50~80년대 작품 75점 선봬

1978년 찰스 주르당(Charles Jourdan)의 봄여름 광고로 발표된 기 부르댕의 작품. 폴라로이드 사진을 활용한 초현실적 이미지는 기 부르댕이 처음 사용했고, 그의 대표작이 됐다. /제공=ⓒ Estate of Guy Bourdin

상반신이 벗겨진 채 바닥에 쓰러진 여인의 입에는 피를 연상시키는 짙붉은 액체가 선연하다. 벌거벗은 몸을 당당히 드러낸 여인의 가슴 끝에서는 빨간 핏줄기가 흘러내린다. 뽀얀 살결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빨간색이다. 패션 사진의 거장이자 시각예술의 천재로 1970~80년대 사진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인물, 기 부르댕(Guy Bourdainㆍ1928~1991)의 작품이다. 작가는 '피의 의미'를 설명하지 않았다. 단지 보이는 대로 음미하라는 그 의도 때문에 관람객의 상상력은 예술과 외설을 마구 넘나든다. 침대 밑에 머리를 들이밀어 엉덩이만 살짝 보이는 사람과 침대 위에 무심히 놓인 작은 코끼리 인형은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폴라로이드 사진 혹은 광고판이나 거울로 얼굴을 가린 사람을 또 다시 찍은 사진 등은 '누굴까' '왜일까'하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것은 무엇이다'라고 명쾌하게 설명해 주지 않으니 상상력은 무한히 증폭한다. 국내 대중에게는 다소 익숙지 않은 이름이지만 기 부르댕은 시대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패션 사진가로 꼽힌다. 기존 상업사진의 틀을 깨고 작품 속에 모호한 설정과 암시, 초현실적 미학을 담아 70년대 후반 시각 예술계 전반을 흔든 '진앙'이었다. 부르댕과 함께 일한 브랜드는 이름 만으로도 화려하다. 찰스 주르당과 이세이 미야케, 베르사체, 로에베, 펜탁스, 엠마누엘 웅가로 등. 1987년에는 샤넬 광고로 뉴욕국제사진센터(ICP)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일화 하나. 세계적인 팝 아이콘 마돈나가 2003년에 내 놓은 뮤직비디오 '헐리우드'에서 11개 장면이 부르댕의 사진과 흡사해 표절 시비가 붙었다. 텔레비전 위에 걸터 앉은 관능적인 여인, 거울 앞에 드러누운 여성의 모습 등이다. 결국 저작권을 관리하는 외아들 사무엘이 마돈나를 고소했고 공방은 아직 진행중이다. 이번 전시는 청담동 소재 복합문화공간 '10꼬르소꼬모'가 개점 2주년을 맞아 기획했다. 미공개 영상작품은 지난해 프랑스에 이어 세계 2번째, 아시아 최초로 선보였다. 사진은 50~80년대 작품 총 75점이 걸렸다. 독특한 시선의 부르댕은 거울을 즐겨 사용했다. 인물을 가운데 두고 주변에 둥글게 8개의 거울을 배치한 대표작이 있다. "거울은 반사와 반복을 보여주고, 굴절과 잔상을 만들어 내기에 하나의 이미지에 많은 얘기를 담을 수 있어 매혹적"이라고 전시 큐레이터 쉘리 버타임이 소개했다. 이를 반영해 8면 원형전시장에 영상작품이 걸렸다. 모델의 몸짓에 둘러싸인 관람객은 일순간 스스로가 거울에 싸여있는 모델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전시는 10층 전시장에서 5월2일까지 열리며, 관람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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