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전통 명절풍경‘기억속으로’

푸짐한 차례상 대신 인터넷몰서 마련<BR>설레는 귀향 아닌‘여행’ 으로 바뀌어




서울 노원구에 사는 ‘새색시’ J모(27)씨. 지난해 11월 결혼, 신혼 재미가 한창인 장씨가 계획한 설 명절은 남편 L모(30)씨와의 중국 베이징 여행이다. 시댁인 전북 전주에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서 간단히 차례를 지낸 뒤 30일부터 2박 3일 일정의 ‘명절여행’을 간다는 것. 이를 위해 장씨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차례용품ㆍ한과 세트를 구입, 간편하게 차례상 준비를 마쳤다. 장씨에게 설 명절 보름 전부터 엿을 고아 한과를 만들고 시루를 걸어 가래떡을 만들어내던 어머니 세대의 모습은 먼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하얀 가래떡’ ‘빛깔 고운 색동저고리 꼬까신’ ‘기름지고 풍성한 차례상’ ‘설’ 명절 하면 떠오르는 정겨운 우리의 전통 풍경들이 아득한 ‘과거형’으로 사라지고 있다. 주5일제 시행과 교통ㆍ통신의 발달 등 사회환경이 급속히 바뀌면서 한국인에게 명절은 과거의 ‘명절’이 아닌 ‘여행’의 개념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은 “요즘 젊은 세대들이 만든 차례상은 정갈하고 깨끗해서 좋긴한데 예전 같은 ‘푸짐하고 풍요로운’ 느낌은 들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특히 ‘비만’이 웰빙시대 최대의 적으로 꼽히면서 전통 차례상 음식들은 모두 ‘칼로리’ 수치로 계량화돼 차례음식 ‘자격검증’을 받고 있단다. 당연히 육류 중심의 기름진 음식들은 서서히 차례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윤 소장은 “소시적 설 명절 보름 전부터 이미 방안 가득 차오르는 술 익는 향기, 물엿으로 한과를 만들고 가래떡을 만들기 위해 힘차게 떡판을 내리치는 모습들이 그립다”고 회상했다. 전통문화 전문가들은 세계화, 도시화, 서구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젊은 세대 사이에서 명절이 ‘여행’의 개념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교통의 발달에 주5일제 근무가 맞물리면서 고향은 이제 절기별로 찾는 곳이 아닌 ‘언제 어디서나’ 들를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부모를 찾아 뵙는 주기가 이처럼 ‘주말 주기’로 바뀌면서 고향은 ‘여행 하듯’ 들르는 곳이 됐다. 이 때문에 예전에 우리가 설 명절에 경험한 모습들은 사라진 채 전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 한국전통문화학교 최종호 교수는 “정보통신과 유통의 발달로 직접 찾아가서 드리는 새해 인사는 ‘휴대폰’ 인사로 대체되고 선물은 ‘배송’으로 간편하게 해결된다”며 “현실에 맞게 명절 문화가 바뀌는 건 당연하지만 이 때문에 오랫동안 간직하고 지켜야 할 것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이북5도민 출신으로 서울에서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K모(60)씨는 “자식들이 고향을 찾지 않고 여행지 콘도에서 차례를 지낸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는 걱정이 든다”고 우려했다. 명절이면 어려운 이웃을 서로 도와주는 우리의 미풍양속도 이번 명절에 특히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설을 앞두고 독거노인, 고아 등 불우이웃을 돕는 내용의 따뜻한 뉴스들이 적잖이 있었는데 올해는 이 조차도 없다”며 “축제적 요소를 극대화하면서 이웃을 도울 수 있는 따뜻한 문화가 함께 녹아 있는 新 명절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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