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애널리스트의 직무유기

“솔직히 모르겠어요. 뭐라고 얘기를 해도 내일이면 또 말을 바꿔야 할 텐데요, 뭘.” ‘외국인 매도세가 언제까지 계속되겠냐’ ‘주가지수는 언제쯤이면 반등하겠냐’는 질문에 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자조 섞인 말투로 대답한다. 평소 같으면 수화기를 통해 질문을 던지기가 무섭게 청산유수처럼 논리 정연한 답변을 쏟아내던 애널리스트들의 말투에 요즘 들어 부쩍 ‘머뭇거림’이 많아졌다. 장밋빛으로 일관하던 5월 장세 전망이 무참하게 깨지고 단기적으로 제기해온 ‘기술적 반등’의 예측마저 번번히 빗나가자 전망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사실 시황 애널리스트 입장에서는 요즘처럼 힘든 장도 보기 드물 것이다. 증시를 좌지우지하는 외국인들의 속내도 알 길이 없고, 급등락하는 장세 때문에 고민 끝에 내놓은 지수 전망치는 하루 만에 깨져버리기 일쑤이고, 연일 빗나가는 전망 때문에 쏟아지는 질타와 회의감은 두고두고 따라다닐 그의 몫이다. 기업 분석 담당 애널리스트도 사정은 나을 것이 없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고객’인 기업을 의식해서 실제보다 부풀려진 투자 의견을 내놓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 한 대형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투자 의견을 ‘매도’로 내는 용감한 애널리스트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기업과 증권사는 철저한 ‘갑-을’ 관계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투자자들은 증권사 리포트의 투자 의견을 ‘알아서’ 낮춰 판단하면 된다는 것. ‘보유’는 차마 내지 못한 ‘매도’ 의견으로, ‘적극 매수’ 정도가 나와야 ‘매수’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얘기다. 다소 과장이 섞였겠지만 증시가 기간조정에 들어섰다는 와중에도 증권사가 제시한 종목별 투자 의견 가운데 ‘매도’가 단 한건도 없다는 사실은 이 말이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애널리스트는 “점술가가 아닌데 어떻게 알겠냐” “기업과의 관계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자신들의 짐을 투자자들에게 전가하고 싶겠지만 이는 엄연한 직무 유기다. 어쨌거나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이 낸 수수료로 억대 연봉을 받고 있는 ‘전문가’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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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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