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고사위기 실물경제­실태진단

◎생산-내수-수출-투자 ‘사지마비’/원자재 현금확보 급급 “하루연명”/내년 경영계획 수립 엄두도 못내실물경제가 고사위기를 맞고 있다. 경기침체에 따른 내수부진, 그나마 우리경제를 지탱해온 수출이 금융시스템의 마비로 차질을 빚고 있고 공급과잉으로 가동률도 낮아지고 있다. 고금리 속에서도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면서 채산성은 악화되고 투자차질이 심화되고 있다. 생산―내수―수출―투자 등 실물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거의 모든 요소들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그 실태와 업계가 요구하는 해결책을 두차례에 걸쳐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편집자주】 ◎30%대 고금리행진에도 자금난/“뭐든지 내다 판다” 현금확보전 /IMF한파에 내수 실종 업종 불문 ‘내년이 더 걱정’ 재고누증으로 공급과잉 감산·조업단축 이젠 예사/금융시스템 붕괴 여파 ‘경제 마지막 보루’ 수출도 마비/환율급등으로 원가부담 가중 철강업계 “손익개념 잊은지 오래” 투자 사실상 중단/경영키워드 ‘성장아닌 생존’ ◆고금리 최악의 자금난 실세금리가 연일 30%를 넘어서면서 기업들이 벼랑끝으로 몰리고 있다. 회사채 수익률(은행보증 3년만기 기준)이 매일 30% 이상을 기록하자 발행회사들이 금리급등에 따른 상환부담 우려 때문에 이를 다시 가져가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들이 견뎌낼 수 있는 금리부담은 14∼15%다』며 『평균조달 금리가 30%일 경우에는 순금융비용 부담률이 매출액의 12%에 달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1천원어치 물건을 팔면 60원을 손해본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업들은 자금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고금리로 외국자본이 들어올 것을 기대했지만 현재 30%가 넘는 금리에도 외국자금은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 더욱 당혹해하고 있다. 이에따라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하루가 버거운 상태. 한 그룹 관계자는 『고금리는 장기적인 문제고 단기 자금유동성이 발등의 불』이라며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돈을 풀지 않아 기업들이 무더기 도산위기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관련, 주요기업들은 상여금지급의 연기나 중단, 알짜배기 회사와 부동산매각 등을 적극 추진하는 등 현금확보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내수침체로 매출 격감 주요 내구성 소비재의 판매가 극도로 위축되고 있다. 가전업계는 올해 에어컨 판매가 호조를 보였지만 하반기들어 판매가 예년의 절반수준에 그치면서 지난해보다 10% 가량 줄어들었다. 이에따라 주요업체들은 내년목표도 줄여잡고 있다. LG전자는 TV·세탁기·에어컨·VCR·냉장고 등 주요가전제품의 내년도 목표를 올해보다 7∼25% 가량 줄였다. 자동차업계는 올해 내수가 지난해보다 7% 가량 줄어든 1백53만대 정도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최근 잇단 유가인상으로 자동차 경기가 크게 위축되면서 이달중 판매가 8만대 미만으로 연초 노동법파업 때의 수준으로 뒷걸음질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업계는 장기무이자할부, 할부금유예제 등 판촉수단을 총동원하고 있으나 IMF한파에 따라 위축된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의류업계도 가을들어 두차례의 가격인하를 단행하고 여러가지 이벤트를 추진하고 있으나 얼어붙은 시장을 풀지 못하면서 중견의류업체들이 잇따라 도산하고 있다. 컴퓨터업계도 내수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뉴텍, 큐닉스, 태일정밀 등 중견기업들이 연쇄도산하고 있다. 시멘트업체들도 올해는 예년수준을 유지하나 내년에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의 격감 등 건설경기 위축에 따라 내수가 15%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업계가 무더기 도산위기에 직면해 있다. 네고난으로 물건을 선적하고도 제때 대금을 받지 못해 수입대금 결제지연은 물론 흑자부도를 우려하고 있다. 또 원자재 수입을 위한 신용장 개설이 아예 불가능하거나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수출품의 생산차질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수출업계는 당장 부도를 막기 위해 수출대금을 최고 연 24%까지 할인하는 등 출혈수출과 덤핑수출을 감수하고 있으나 이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단지 채산성만 극도로 악화되고 있을 뿐이다. 바이어들의 이탈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환율이 요동치는데다 우리 업체들의 도산우려로 다른 나라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업계가 무엇보다 우려하는 것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가 장기적으로 수출기반을 흔들어 놓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한번 무너진 수출기반을 되살리기에는 너무도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환율급등·원가부담 가중 환율이 급등하면서 원가부담이 가중되고 채산성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석유화학업체들은 환율상승에 따른 원가상승분을 가격에 반영하면서 전자·자동차·기계업계의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다. 유화업계는 폴리염화비닐(PVC), 스티렌모노머(SM), 폴리스티렌(PS)을 비롯한 주요 석유화학제품 내수판매가격을 지난달보다 9∼46.2% 정도 인상했다. 지난달까지 톤당 85만5천원선을 유지하던 PS의 경우 이달들어 1백25만원으로 급등, 무려 46.2%나 인상됐다. 또 바닥재 및 생활용품의 기초원자재인 PVC는 지난달까지 톤당 81만5천원을 유지했으나 이달들어 톤당 1백13만원으로 38.6%가 뛰었으며 자동차·전자제품의 주요 원료인 ABS는 톤당 1백45만달러에서 37.9%가 올라 2백만원을 넘어섰다. 저밀도폴리에틸렌(LDPE) 및 고밀도폴리에틸렌(HDPE)은 각각 9.2%, 4%가 올라 톤당 95만원, 78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정유업계는 환율이 1천7백원대를 넘어서면서 업계의 올 한해 동안 환산손은 8조8천억원에 달하고 있다. 이중 휘발유 등 제품값에 반영해 3조원 정도를 회수할 수 있으나 제품값에 반영하기까지는 3개월이 소요돼 실제 업계가 연말까지 떠안아야 할 환산손은 5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자·정보통신업계도 환차손으로 고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해외차입규모가 40억달러에 달해 연간 5천억원정도의 추가 이자부담을 떠안게 됐고 이미 확보된 원자재나 부품도 내년초면 바닥날 것으로 보여 원자재 및 부품에서도 추가 부담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비철금속 업계도 환율급등에 따라 원자재난으로 고전하고 있다. 국내최대의 비철업체인 LG금속은 이달초부터 마비된 은행 신용장업무로 인해 광석수입이 막히고 있다. 이 회사는 1년에 50만톤 가량의 동광석을 제련, 연간 23만톤의 전기동을 생산하고 있는데 현 재고가 평균치(한달반분)의 절반에 불과하다. 면방업계는 원면 수입의 전면중단으로 내수용 생산은 중단한 상태며 수출용만 생산하고 있다. 4억달러에 달하는 미농무성의 원자재 구매자금(GSM)을 기대하고 있으나 1월말이나 돼야 가능, 다음달 중순부터는 전면 조업중단이 우려되고 있다. 원료인 고철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철강업체들은 막대한 환차손 때문에 손익의 개념을 잊은지 오래다. 이제는 공장이 정상적으로 가동돼 제품생산만 제대로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전기로업체들은 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환율이 1백원씩 오를 때마다 4백억∼6백억원 가량의 환차손을 보고 있다. 3·4분기 9백원대를 기준으로 하면 수천억원씩의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 셈이다. ◆넘치는 재고 조업시간 단축 자동차업체들은 재고가 11월말 현재 11만대를 넘어서면서 잇따라 조업을 단축하고 있다. 현대, 기아자동차는 재고누적에다 만도기계의 부품공급 중단으로 인해 24일부터 전공장의 가동을 중단했으며 쌍룡도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대우는 잔업을 중단한 상태. 유화업계는 공급과잉에 따른 재고누증으로 수출가격 하락이 불가피한 상태다. 업계는 자율적으로 대대적인 감산을 단행하고 있다. 합성수지의 경우 20∼30%를 감산중이거나 감축할 예정이다. 한화종합화학은 지난 8일부터, 대림산업은 21일부터 합성수지 등 일부품목의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했다. 또 호남석유화학은 LDPE 생산라인을 일주일 동안, 삼성종합화학 등 폴리에스터 원료업체들도 잇따라 감산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사업계획도 못세워 환율이 하루가 멀다고 급등, 달러당 2천원대를 오가고 있고 금리도 30∼40%대의 살인적인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사업계획 수립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삼성은 일부 계열사들이 이미 사업계획을 세웠으나 최근 사장단 인사가 있었던 만큼 연말까지 각 계열사별로 사업계획안을 새로 마련한 뒤 그룹의 조정작업을 거쳐 내년 1월중순께 확정할 계획이다. LG는 이달들어 구본무그룹회장이 급변하는 경영상황을 고려해 사업계획을 전면 재조정할 것을 지시, 현재 각 CU별로 사업계획을 다시 마련하고 있으며 대우도 지난달 중순께 내년도 투자계획과 매출규모 등을 잡았으나 이달들어 상황이 급변, 당시 계획을 전면 재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오롱그룹은 최대 변수를 환율로 잡고 달러당 1천2백원, 1천5백원, 1천5백원 이상 등 3가지 시나리오를 마련해 놓고 있으나 1천5백원 이상일 경우 사업계획 수립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현대, 기아, 대우 등 자동차업체들은 당초 올해수준 유지를 목표로 했으나 IMF체제에 따라 이를 수정, 내수가 20% 줄어들 것으로 보고 수출위주의 경영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우는 IMF구제금융 신청이전인 지난 10월말 내수목표를 44만2천6백대로 정했으나 현재 수정작업에 들어가 30만대선으로 줄여잡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SI업계는 재계 및 정부의 사업계획이 오리무중에 들어감에 따라 벌써 서너번씩 사업계획을 수정했으나 손을 놓고 있으며, 정유업계는 널뛰는 환율에 따라 잠정 계획만 마련해 놓고 있다. 이에따라 주요업체들은 환율을 ▲최고 2천원 ▲1천8백원 ▲1천6백원 ▲최저 1천2백원 등 4가지로 예상하고 이에 맞는 투자 수출목표 등에 대해 신축성있게 대처하기로 했다. 기업들은 현재와 같은 외환및 금융위기에 대응, 제로베이스가 아닌 마이너스베이스에서 ▲핵심사업 투자를 제외한 신규투자 전면중단 ▲강도높은 경비절감및 조직축소 ▲임금삭감 ▲한계사업정리등 극한경영에 돌입하고 있다. ◆투자포기 속출 투자는 사실상 중단위기를 맞고 있다. 거의 모든 기업들이 제반 투자 및 경비지출 중단을 결정한 상태며 내년도 투자도 최대 50%까지 줄여잡고 있다. 상위권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투자확대를 추진해온 대우도 당초 6조3천억원으로 올해보다 10% 늘리려던 것을 올해 수준(5조7천억원선)으로 조정할 계획이다. 또 해외투자사업에 대한 재검토작업에 나서 우선순위를 결정하기로 했다. 해외투자 위축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영국 티스사이드 가전공장 내에 4억5천만 파운드를 들여 건설하려던 팩시밀리·컴퓨터공장 건설사업을 무기한 연기했고 미AST공장에 대해서도 구조조정에 착수, 3천명의 직원 중 37%인 1천1백10명을 감축했다. LG전자는 영국 웨일스에 가전복합단지공장을건설하기 위해 1차로 3억4천만달러를 투자했으나 2차투자(3억4천만달러)계획은 상황에 맞추기로 했다. 또 현대자동차는 인도네시아에 1억5천만달러를 투자해 세우기로 한 공장건설 계획을 내년 4월로 연기했다.<산업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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