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8일] 아브라함 다비

산업혁명 발원지는 영국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철강 부족에 시달렸을 테니까. 아브라함 다비(Abraham Darbyㆍ1678~1717. 3. 8). 영국 산업혁명의 숨은 공로자다. 다비의 당초 직업은 주물업자. 철제 냄비와 주전자가 인기를 끌어도 그는 불안했다. 원자재 부족 탓. 면직공업 기계화가 진행되던 당시 영국은 철 수요의 절반 이상을 수입하는 형편이었다. 철 생산의 연료이자 재료였던 목탄(숯)을 생산할 산림자원이 빈약했기 때문이다.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목재를 가진 스웨덴과 러시아산 철강에 의존할 수밖에. 다비는 용광로에 석탄의 일종인 코크스를 섞어 넣는 기술을 1709년 개발, 목탄 부족 문제를 해결했다. 품질 개선은 물론 공정이 단축되고 단가도 낮아졌다. 불과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다비가 못다한 꿈은 후손들이 대신했다. 다비 2세는 목탄을 코크스로 완전 대체하는 공법을 개발(1735년)해냈다. 최초의 상업적 증기기관인 ‘뉴커먼’ 엔진의 실린더도 납품했다. 양질의 철로 만들어진 증기기관은 제철소 대형화와 자동화에 투입돼 대량생산으로 이어졌다. ‘기술혁신 상호작용’의 전형적인 사례다. 다비 3세는 1779년 세계 최초의 철교인 ‘아이언 브리지’를 세우고 공장에 증기기관을 들여와 영국 최대의 제철소를 건설, 철을 쏟아냈다. 1740년 1만7,000톤이던 영국의 철 생산량은 1840년 132만톤으로 늘어났다. 다비로 시작된 영국의 철강기술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낳았다. 영국과 독일ㆍ미국ㆍ일본을 지나온 국제 철강기술 발전사는 국가의 흥성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파이넥스(FINEX) 공법을 개발, 기치를 올린 한국은 중국ㆍ인도의 추격에 직면한 상태다.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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