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 중소기업 간담회 자리에서는 기업의 가장 큰 애로점인 ‘돈’ 문제가 토론에 부쳐졌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중소기업의 재무구조가 상당히 건전화됐다는 평가들이 오갔다.
은행이 선뜻 신용대출을 하게끔 더욱 분발하라는 덕담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기분은 씁쓸했다. ‘우량해진’ 재무 상태의 이면을 보면 마냥 반길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취재차 만난 인천의 한 내비게이션 솔루션 업체의 한 관계자.
그는 “담보가 빈약하면 은행 대출은 꿈도 못 꾼다”며 “수익이 나더라도 3년 이상 누적된 실적이 필요해 정작 돈이 필요한 신생 업체들은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
인근의 한 업체는 연말 결산에서 적자가 나자 은행이 대출금을 즉시 회수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정도 귀띔해줬다.
중소기업의 재무 상태가 외관상 ‘그럴듯해지는’ 데는 이런 속사정이 녹아 있다.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에 묶여 웬만해서는 신용으로 자금을 풀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대출심사에서 부채 비율 등 보다 강화된 기준을 들이대다 보니 돈을 줄 기업은 점점 더 줄어들고 편중되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러니 중소업체들은 몸 사리기에 바쁘다.
가뜩이나 회계심사 강화로 여력이 달리는 차에 ‘사업을 키워보겠다’는 투자 마인드는 꽁꽁 언다. 돈을 못 빌리니 당연히 재무 상태는 나아진다. 부채 비율 감소는 빛 좋은 개살구인 셈이다. 달리 보면 창업 이후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우려되는 것은 창업 의지마저 꺾이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업을 일으켜 이윤과 고용을 창출하고자 하는 옹골찬 젊은이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는 금융기관이 신용대출에 보다 전향적으로 나서야 하고 업종에 따라 대출 기준도 융통성 있게 적용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나마 우리은행 등이 기술력으로 돈을 빌려주는 ‘하이테크론’을 실시하고 있어 다행스럽다. 성장과 좌절의 갈림길에서 높은 은행 문턱 때문에 사업을 접는 일은 가급적 줄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