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박근혜 대표의 딜레마

전용호 기자<정치부>

“박근혜가 누구의 딸이라는 것은 잊어달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20일 비공개로 진행된 상임운영위원회에서 최근 잇달아 공개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거사에 대해 소회를 밝혔다. “문서 공개에 대해 공당으로서, 공당 대표로서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자신이 한나라당의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한 발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그만큼 한국 역사에서 극명하게 평가가 엇갈리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가 사망한 지 25년이 지났지만 많은 중장년층들은 여전히 그를 ‘리더십 있는 대통령’ ‘한국 경제의 선구자’ 등 칭송을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면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 운동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기도 한다. 반면에 진보진영에서는 ‘군부독재자’라며 반민주적인 대통령으로 몰아붙인다. 이른바 반공 이데올로기로 수많은 용공사건을 조작, 민주주의 세력을 탄압했다며 비판의 날을 세운다. 최근에 잇달아 발표되고 있는 과거사는 박 전 대통령의 평가에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박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가난했던 대한민국을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이끈 부분이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한일협정은 이 같은 경제성장이 국민들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청구권 보상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자”는 일본측의 요구에 대해 당시 주일 대사는 “청구권 문제는 국내 문제로 취급돼야 한다”며 스스로 청구권을 포기, 일본에 법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차단당했다. 형식적인 보상으로 일관하고는 이국 땅에서 외롭게 숨져간 자국민들에게 제대로 사과 한번 한 적 없다. 20일 밝혀진 문세광 사건에서도 박정희 정권의 불투명성은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일본에 단교를 요구할 정도로 자신이 있는 사안이었다면 왜 129일 만에 바로 문세광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을까. 당시 청와대 경호실은 무엇 때문에 사건 직후 현장검증도 제대로 안하고 서둘러 봉합했던가. 박 전 대통령은 이제 한줌의 흙이 됐고 딸인 박근혜 대표가 야당을 이끌고 있다. 당 대표직까지 오른 데는 아버지의 ‘후광’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아버지가 ‘짐’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박 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서는 떳떳이 역사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하지 않을까. 아버지와 확실한 선 긋기를 하지 않는 한 국민들은 그가 누구의 딸이라는 것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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