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고장난 위험 경고등


지난 9월26일은 웅진홀딩스 투자자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날이었다. 웅진홀딩스는 이날 장 시작과 함께 6%나 급등하면서 전날의 상한가 분위기가 이어지는 듯했다. 웅진폴리실리콘이 매각될 경우 그룹의 유동성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시장에 퍼진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강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웅진홀딩스는 개장 후 불과 10여분 만에 하락세로 돌아서더니 오후2시께부터는 하한가로 추락했다. 계열사인 극동건설이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장 마감 뒤에는 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극동건설뿐만 아니라 그룹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도 함께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이다. 투자자들로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그야말로 메가톤급 악재였다. 웅진홀딩스는 다음날부터 거래가 정지되면서 투자자들로서는 자금을 현금화할 수 있는 길마저 막혀버렸다.

웅진 사태는 우리나라 증시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윤석금 회장을 비롯한 웅진그룹 측은 법정관리를 신청하기까지 일절 비밀에 부쳤다. 전날인 25일 웅진홀딩스가 상한가를 쳤지만 투자자들에게는 아무런 경고 사인을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회사 내부자인 윤 회장의 부인 김향숙씨와 임원들은 계열사 주식을 슬그머니 내다 팔았다. 투자자들이야 손해가 나든 말든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발상이다. 회사 내부자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 거래를 했다면 이는 법적인 처벌 대상이다.

웅진사태 신용평가 총체적 부실


더 큰 문제는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기까지 우리 증시의 위험 경고등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신용평가사들이다. 신평사들의 주된 임무는 기업의 리스크를 사전에 감지해 투자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웅진 사태와 관련해 신평사들은 전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신평사들은 웅진홀딩스에 A-나 BBB+ 등 투자 적격 신용등급을 부여하고 있다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다음날에야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를 뜻하는 D등급으로 부랴부랴 내렸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번 웅진 사태를 신평사 리스크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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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사들의 뒷북 평가는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대한해운 법정관리 신청 때도 그랬고 LIG건설이나 진흥기업, 동양건설산업 등도 해당 기업들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을 신청한 뒤에야 투자 부적격 등급으로 강등시켰다. 문제는 이 같은 부실 신용평가의 피해가 고스란히 투자자들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신평사들은 회사채나 기업어음(CP) 투자 손실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왜 이 같은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일까. 이는 우리나라 신용평가제도의 구조적인 취약점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과는 달리 정부 주도로 신용평가제도가 도입되다 보니 시장 진입과 퇴출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부실 평가에 대한 논란이 있든지 말든지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 NICE신용평가 3개사의 과점체제에는 변화가 없다. 평가사들의 부실 평가가 있어도 마땅한 제재수단도 없다. 신용평가의 주도권을 평가업체가 아닌 유가증권 발행회사가 쥐고 있는 점도 구조적 뒷북을 불러오는 요인이다.

불량업체 퇴출 등 제도개선 필요

이 같은 현상을 더 방치하면 과거 미국의 엔론파산과 같은 나라 경제 근간을 흔드는 사태가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실물경제와 금융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면 그 틈을 비집고 투기세력이 기승을 부리면서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하게 된다.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공매도 세력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래서 각국은 실물과 금융 간의 괴리를 최대한 좁히려고 한다.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금융감독당국이고 신평사들이다. 만일 사전 경고 기능이 작동하지 않으면 경제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정부는 신용평가 리스크가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도록 제도 전반에 대해 재점검을 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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