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중국 상하이에 사는 딸 식구가 서울에 왔다. 외손자 두명이 토마스라는 장난감 기차놀이를 하고 자라서인지 기차를 무척 좋아한다. 손자들이 좋아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모두 함께 서울역을 찾았다. 야간관광열차는 밤8시에 떠났다. 창밖은 칠흑같이 캄캄해 보이는 것이 없다. 야간열차에서는 밖을 볼 수 없고 열차 안을 보는 것이다. 열차 안은 젊은 연인들, 아이들, 나이 지긋한 노부부…. 추억과 꿈을 싣고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안내원이 나눠준 와인과 치즈를 즐기면서 여러 모양의 ‘사랑의 촛불’ 만들기에 열중했다. 추억을 만드는 이벤트같이 느껴졌다. 기차를 타면 우선 마음이 편하고 여유가 있어 뭔가 생각하게 한다. 세계인의 애창곡이 된 그리스 국민작곡가 테오도라키스의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갑자기 떠오른다. 문명 발상지 그리스는 15세기 오스만 튀르크의 침공으로 암흑기에 접어들고, 그 문화는 빛을 잃어갔다. 1830년 근대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됐지만 터키와의 전쟁,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연이은 내전으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시련의 민족혼이 음악에 살아 있는 것인가. 그리스의 음악은 그 어느 나라 민족음악보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그 명맥을 이어왔다.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네 11월은 네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내 기억 속에 남으리 카테리니행 기차는 영원히 내게 남으리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당신은 오지 못하리 …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었네.” 일본 철도회사 JR의 광고가 문득 생각났다. ‘만나는 것이 최고, 돌아오는 당신이 최고의 선물’이라는 헤드라인이 수많은 연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은 기차가 최고라는 것이다.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시애틀까지 가는 기차를 탄 적이 있다. 기차는 갑갑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느렸다. 하지만 그 덕에 태평양을 눈이 시리도록 보았고, 굽이굽이 펼쳐지는 절경에 혼을 빼앗기며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왜 그렇게 조급하게 허둥대며 살아왔을까. 이 기차처럼 주위를 돌아도 보고 멈추기도 하면서 달려왔으면 더욱 보람찬 삶을 살았을 것 같다. 기차가 왜 느리게 달리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도 느리게 달리는 낭만열차를 타는 날이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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