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회계사 연대책임제 개선

서태식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옛날에 연좌제라는 것이 있었다. 범죄예방 정책의 하나로 범인의 친척이나 이웃 사람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무지막지한 제도였다. 기업의 분식회계를 적발하지 못하면 공인회계사에게도 연대책임을 묻게 돼 있다. 관련법에 따르면 기업에 분식이 있는 경우 기업과 기업의 임직원, 사외이사 등과 함께 공인회계사에게도 연대책임을 묻게 돼 있다. 공인회계사가 기업 임직원과 함께 기업을 공동 경영한 것도 아니고 공모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연좌제가 다시 살아난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그 책임은 자기의 잘못에 상응하는 정도라야 할 것이다. 남의 잘못에까지 연좌죄로 다루듯이 연대책임을 지운다면 자신의 행위와 관계없는 억울한 책임을 지는 일이 빈발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과거분식의 원인들을 보면 참으로 다양하다. 기업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재무비율을 무리하게 맞춰 지속적인 금융지원을 받기 위한 경우, 대북 송금이나 정치 자금 등의 목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한 경우, 횡령이나 착복을 감추기 위한 경우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기업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분식을 하게 된 절체절명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기업이 분식을 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공인회계사든 사외이사든 정부(감독원이나 국세청)든 마음대로 속일 수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업 외부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기업이 하는 일을 낱낱이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숨기면서 하는 일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런 분식이 여러 차례 사후에 발견되기도 했고 아직도 상당히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집단소송제가 실시되는 지금에 와서 기업들은 이런 현실을 알고 있을 터이며 그것이 드러날 경우에 있을 수 있는 재앙이 예견돼 당분간 불문에 부쳐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답답한 것은 이들 기업을 감사하면서 감쪽같이 속은 공인회계사들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으나 총체적으로 보면 엄청나게 속은 것은 분명하다. 더 답답한 것은 이러한 사실이 모두 드러나게 되는 날 이들 기업을 감사한 공인회계사도 기업과 함께 큰 재앙 속에 빠져들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도 분식회계(회계 부정)를 드러내놓고 하지는 않는다. 아주 은밀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사외이사도 속고 외부감사인도 속고 정부도 속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외의 다른 사람은 모두 무한으로 연대책임을 추궁당할 운명에 있다. 재판을 거쳐 잘못이 없음이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무죄입증은 파산직전에나 가능할 것이다. 현 제도가 누구라도 이해관계인(공인회계사 포함)에 대해 소송은 걸기 쉽게 해두고 그들이 자기의 잘못이 없음을 입증하면 그때 가서야 비로서 손해배상책임을 면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이를 감사한 공인회계사가 설혹 어떤 실수로 이를 적발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기업과 감사인 사이에 공동의 의사가 없었다면 별개의 잘못이 병존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연대책임을 묻는 것은 묵시적으로나마 서로의 양해가 있었으리라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라 본다. 이는 회계감사 한 것을 마치 기업의 회계서류에 대해 연대보증을 선 것과 같은 취급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제 회계감사는 회사의 분식이나 부정을 적발하는 것이 1차적인 목적은 아니다. 재무제표 작성에 오류가 있거나 회계기준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한 경우 이를 지적하거나 고쳐주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의도적인 분식에 대해 연대책임을 지우고 보증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기 그지없다 할 수 있다. 어떤 전문직에도 판단을 요하는 분야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실수가 있게 마련이다. 의사의 오진율이 얼마나 높다던가. 중대한 과실(gross negligence)이냐, 보통의 과실(normal negligence)이냐의 차이지 전문서비스에서도 실수와 과실은 있는 것이고 회계감사에서도 완벽한 감사란 있기 어려운 것이다. 집단소송제의 원산지인 미국에서는 남소를 줄이기 위해 공인회계사에게 연대책임을 묻지 않는다. 입증책임도 피고가 아닌 원고에게 지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집단소송제에, 연대책임제에 입증책임까지 피고에게 지우고 있으니 우리나라의 공인회계사는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책임 추궁을 당할 수 있는 나라에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는 그동안 회계감사를 하면서 자본시장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해왔고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직업의식을 가져왔다. 그런데 사회가 그들을 ‘기업의 부실을 눈 감아주고 몇푼의 보수나 얻어먹는’ 부도덕한 사람으로 치부하면 그들의 직업인격은 더 이상 존립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시장경제의 중요한 사회적 자산인 공인회계사 제도나 회계법인을 남소와 과도한 책임 추궁으로 파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위해서는 공인회계사에게 지우는 입증책임이나 연대책임 같은 부당하고 가혹한 제도는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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