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3월 10일] <1641> 셰필드 물난리


1864년 3월11일, 영국 중부 셰필드. 한밤중에 느닷없이 재앙이 닥쳤다. 준공 직전의 데일 다이크 댐이 터졌기 때문이다. 높이 30m, 폭 152.4m에 갇혀 있던 300만㎥의 물은 거대한 폭탄으로 변해 사람과 건물을 집어 삼키고 휩쓸었다. 생후 이틀 지난 아기부터 87세 할머니까지 240명이 한겨울 차디찬 물결에 휩쓸리거나 추위에 떨다 목숨을 잃었다. 주택 415채가 부서지고 409채가 반파되거나 물에 잠겼다. 물길이 지나간 수로에 위치한 20개 교량 중 15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5개는 형태만 남았다. 일찌감치 산업혁명이 시작된 지역이었기에 산업체의 피해도 컸다. 철강과 주물공장 12곳이 완파되고 25곳이 반파됐으며 80곳이 침수됐다. 농장과 방앗간ㆍ가죽공장 등도 771개가 침수되거나 쓸려나갔다. 셰필드의 참사는 지금까지도 영국에서 인공 조형물에 의한 재난 가운데 최대 규모로 꼽힌다. 참사의 직접적 원인인 댐을 축조한 이유는 산업화. 철강공장이 들어서고 인구가 늘어나자 공업ㆍ생활용수 공급을 위해 4개의 댐을 건설하던 중 사고가 터졌다. 최악의 물난리는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의 소송을 불렀다. 사고 발생 7시간 전에 신고된 손가락만한 균열을 감독관이 묵살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에는 소송이 더욱 밀려들었다. 인명ㆍ재산피해 소송 6,987건에 보상 요구액 45만8,552파운드. 영국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해 보상금 27만3,988파운드를 내줬다. 셰필드는 영국 중부를 휩쓴 2007년 폭우에서도 집중피해를 당했다. 유달리 피해가 컸던 셰필드는 '운하와 저수지가 수해를 키웠다'며 물줄기를 자연 상태로 되돌리려 노력하고 있다. 남들은 강을 자연에 맡기는 마당에 우리는 파 들어간다. 경고나 반론은 묵살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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