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도요타 정신과 지역혁신

유희열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참여정부의 화두를 꼽으라면 단연 지역혁신ㆍ균형발전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지역혁신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방분권특별법ㆍ국가균형발전특별법 등 ‘지방살리기법’까지 만들었다. 최근 2~3년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지역혁신의 가속화를 위한 각종 계획들을 추진 중이다. 수도권의 지나친 비대화를 바로잡고 전국을 골고루 잘살게 하기 위한 바람직한 현상이라 생각한다. 한편 지역혁신을 지나치게 첨단산업화ㆍ공업화 등과 동일시하거나 관 주도의 제2차 새마을운동쯤으로 이해하는 일부 왜곡된 시각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지역혁신을 하자면서 ‘지역’을 대상화하고 소외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웃나라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성장과 발전 역사는 우리에게 몇 가지 흥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 도요타는 지난 2003년도에 이미 미국의 포드를 제치고 세계 제2위의 자동차생산회사로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실적은 18조엔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며 순이익은 1조3,000억엔 규모로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이익을 올리는 회사로 발돋움했다. 부품 재고율 0%를 추구해 하나의 경영기법으로 인정받기까지 한 ‘JIT(Just In Time)’로 더욱 유명하다. 그러나 정작 도요타가 자리잡은 곳의 옛 지명이 미카와(三河ㆍ도요타가 유명해지자 59년 아예 도요타시로 개명)라는 것과 이곳이 100년간의 전국시대를 끝내고 에도막부(江戶幕府)를 연 인물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출생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기업하는 사람에게 공장 입지는 모든 것 위에 설 만큼 중요한 요소다. 도요타가 도쿄나 오사카를 선택하지 않고 도쿠가와의 출생지인 옛 미카와를 공장 입지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미카와 지역민의 애향심과 결속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도쿠가와 시절에는 일본 통일의 원동력이었으며 막부시대에는 농민군을 결성, 서슬 푸른 사무라이 군대를 막아내고 지역을 지켜냈다고 하니 그 애향심과 단결력이 놀랍지 않은가. 도요타자동차의 살아 있는 전설 도요타 에이지(豊田英二) 최고고문은 ‘도요타의 성공요인은 도쿄대 출신보다 충성심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도요타의 미카와 선택은 새로운 시도였다. 그리고 매우 적절했다. 애향심과 충성심 강한 이 지역 출신의 중견간부를 요직에 배치, 직원간의 결속력을 높이고 개혁의 교두보로 삼았다. 도쿄나 오사카에 비하면 오지에 가까웠던 탓에 명문 도쿄대 출신 임원이 30%를 밑돌아 파벌싸움도 일어나지 않았다. 경쟁사인 닛산자동차가 65%가 넘는 도쿄대 출신 임원들의 파벌싸움과 경영권 분쟁, 퇴직 도쿄대 선배들에 대한 전관예우식 밀어주기 등으로 망한 것과 비교할 때 현명한 선택이었음은 자명하다. 도요타시는 미카와 지역민의 특유의 단결력ㆍ애향심과 함께 도요타기술전문학교ㆍ나고야대학 등 지역의 인재 활용과 민간기업의 경영철학이 빚어낸 종합작품이다. 여기에다 일본 정부는 도메이ㆍ한신고속도로를 도요타시와 직접 연결시켜줌으로써 오사카ㆍ도쿄를 비롯한 일본 각지 및 세계로 뻗어나갈 인프라를 제공했다.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오지 마을이 세계적인 지역클러스터로 탈바꿈한 것이다. ‘잃어버린 10년’ 기간에도 이곳에서는 불황이 남의 일이었을 뿐이다. 도요타 사례에서 보듯이 지역혁신이란 지역의 발전을 지역의 구성 주체가 새로운 혁신의 동력을 창출해 꾀해나가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역혁신은 성숙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참의미의 지방화, 분권화 및 자주재정으로 가는 길목이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한국형 지역혁신클러스터의 씨앗이 곳곳에서 발아되고 있다. 중앙정부의 적절한 인프라 구축과 더불어 지역의 각 혁신주체들의 적극적인 자기 역할 찾기가 강조돼야 할 것이다. 특히 이제는 주민이 지역혁신의 주체로 나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사회 특유의 애향심 또는 지방색도 혁신의 동력으로 승화시키는 혜안이 필요한 때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