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불황극복의 현장:6/경비절감 한국통신(경제를 살리자)

◎「예산혁명」… 올 10% 1조 감축/호텔행사·해외출장 자제… 경영계약제 도입도지난 3월4일 한국통신 11층 회의실. 이계철사장과 20여명의 본부장이 모인 회의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이사장이 3천1백47억원의 2차 예산절감방침을 시달한 까닭이다. 본부장들은 이미 연초에 평균 7.3%인 6천8백25억원의 예산절감을 지시받은 바 있어 이제 총예산(9조3천2백24억원)의 10.7%(9천9백72억원)를 줄여야 하는 것이다. 『어려운 줄 압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닥친 상황이 마른 수건을 다시 짤 것을 요구하고 있어요.』 이사장의 호소는 간절했다. 1백여년간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한통이 전례없는 대규모 예산절감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다급하기 때문. 한통은 최근 통신시장이 경쟁체제로 재편되면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새로 태어난 경쟁업체들은 효율성을 앞세워 시장을 급속히 잠식해오고 있는데도 정부투자기관이라는 굴레 때문에 요금 하나 자유롭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6조9천9백63억원으로 전년 대비 9.9% 증가했지만 순이익은 1천8백18억원으로 전년의 4천1백90억원에 비해 오히려 절반 이하로 줄었다. 정부가 예산을 동결하는 바람에 올해는 인건비지급예산마저 1천5백여억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수익구조는 갈수록 약화되고 있지만 돈쓸 곳은 자꾸 늘고 있다. 곧 밀려올 외국업체들과의 경쟁에 대비해 통신망의 질을 높여야 하고 새로 시작하는 시티폰사업에도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강태풍 손익기획부장은 『내부에서는 예산혁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거품을 걷어내는 수준이 아니라 뼈를 깎는 심정입니다. 부서 전직원이 며칠밤을 꼬박 새우며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고 말했다. 한국통신은 한푼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해외출장을 20% 줄이고 사내행사시 지급해온 체육복을 사복으로 바꾸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아끼고 또 아꼈다. 중간관리자 이상의 업무추진비도 20% 줄였다. 호텔 등 외부시설을 이용하던 행사도 자체 연수원을 사용하도록 바꿨다. 시행 초기 『어떻게 일을 하란 말이냐』는 반발이 일어난 것은 당연했다. 한국통신 경영진은 전국 지역본부를 돌며 회사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동참을 호소했다. 결국 효과는 있었다. 우승술 마케팅본부장은 『실시 초기와는 달리 직원들도 이제는 이같은 방안에 동감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살아야 자신들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한 것이죠』라고 말했다. 한국통신은 「경영계약제」 를 실시하는 등 인사제도에 대해서도 메스를 가하고 있다. 실적이 목표에 못 미친 본부장과 계열사사장은 과감히 도려낸다는 것이다. 특별한 과오가 없으면 정년이 보장되던 종전 한국통신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통신시장은 내년에 완전 개방된다. 한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눈독을 들여온 외국업체들은 각종 서비스로 융단폭격을 퍼부을 것이다. 한국통신의 이같은 몸부림은 1백여년 전 개항때 무방비상태로 당했던 전철을 더이상 밟지 않겠다는 애절한 몸짓이다. 이같은 몸짓이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백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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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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