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6월10일] 볼펜

헝가리 신문기자 라디즐로 비로는 잉크와 악연이 많았다. 마감에 몰려 원고를 촉박하게 작성할 때마다 잉크가 엎질러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펜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 고민하던 그는 오래돼 끈적끈적해진 잉크에서 아이디어를 찾았다. 화학을 전공한 동생 게오르그까지 합류, 1938년 점액성분이 강한 잉크와 펜촉에 볼베어링을 달은 볼펜을 만들어냈다. 비로 형제는 꿈에 부풀었지만 2차 대전이 상품화를 막았다. 조국이 독일에 점령당하자 형제는 전쟁특수로 호황을 누리던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기술을 지닌 형제는 환대 받았다. 1943년 6월10일 아르헨티나 특허 취득. 반응도 좋았다. 특히 첫 고객인 영국 공군은 높은 고도나 불시착 같은 극한상황에서도 잉크가 새지도 마르지도 않는 볼펜을 극찬했다. 막상 대박이 터진 곳은 미국.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여행하던 레이놀즈는 형제의 제품을 베꼈다. 1945년 10월 말 뉴욕에서 발매된 레이놀즈의 볼펜은 한 자루에 12달러50센트라는 가격에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요즘 가치로 130달러가 넘는 돈이지만 수영선수 출신 유명 모델이 수족관에서 볼펜으로 글을 쓰는 광고전략이 먹힌 덕분이다. 레이놀즈가 수백만달러를 벌어들이자 치열한 경쟁과 특허권 소송이 뒤따랐다. 파커사까지 끼어든 경쟁의 최종 승자는 프랑스인 마르셀 비크가 1945년 설립한 빅(BIC)사. 파커의 볼펜 사업까지 인수한 빅은 단순한 디자인을 무기로 전세계 시장을 휩쓸었다. 한국은 예외다. 1963년 선보인 ‘모나미 153볼펜’이 43년째 국내 시장을 지키고 있다. 발명자 비로 형제는 이름을 남겼다. 아르헨티나는 ‘발명의 날(9월29일)’을 라디즐로의 생일에서 땄다. 남미 국가들과 영국에서는 볼펜을 ‘비로’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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