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3월 4일] <1635> 잭슨 데모크라시


1829년 3월4일, 미국 워싱턴DC. 허름한 차림의 서부개척자에서 농민ㆍ흑인까지 수만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자신들의 열광적 지지로 7대 대통령에 당선된 앤드루 잭슨의 취임식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잭슨이 성서에 입맞추는 순간, 2만1,000여 군중이 대통령과 악수하기 위해 달려들면서 행사장은 난장판으로 변했다. 음식이 사라지고 접시와 유리그릇ㆍ도자기가 깨졌다. 버지니아와 매사추세츠의 부유한 가문이 아니라 서부 출신의 첫 대통령인 잭슨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상류층은 '고결한 시대가 지나갔다'고 한탄했지만 시작에 불과했다. '잭슨 민주주의(Jacksonian democracy)' 시대가 열린 것이다. 독립할 때 400만명이던 인구가 1,200만명으로 불고 영토가 갑절로 확장되는 동안 유지돼온 구질서를 깨는 개혁도 다방면에서 일어났다. 저항이 따랐지만 잭슨은 영국군에 대승을 거둔 뉴올리언스 전투의 영웅이라는 대중적 인기를 업고 밀고 나갔다. 관료층도 지지자로 갈아 치웠다. 정치권이 입맛대로 관리를 임명하는 미국식 엽관제(獵官制ㆍspoils system)가 이때 본격화했다. 납세액에 따라 선거권을 차등 행사하는 구습도 완전히 없애 미국식 민주주의를 그린 인물로도 기억되지만 인디언에게는 악행을 저질렀다. 백인에게 분배할 토지를 빼앗기 위해서다. 잭슨 시대의 경제적 성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외국자본과 대지주를 견제하기 위해 제2합중국은행의 존속시한 연장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은행 전쟁'의 파장이 1837년 대공황을 낳았다는 비판과 두번째 임기 중반인 1935년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국가채무를 전액 상환한 업적에 빛난다는 찬사가 공존한다. 날이 갈수록 채무부담에 허덕이는 요즘은 후자의 평가가 늘어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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