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볼 수 없지만 귀를 통해 판소리할 수 있어 행복"

시각장애인으론 첫 고법발표회 앞둔 조경곤씨

조경곤(38)씨

“판소리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인천시 서구 가정2동에 사는 1급 시각장애인 조경곤(38)씨의 직업은 판소리에서 노래가 나올 때 북으로 장단을 맞춰주는 역할을 하는 고수(鼓手).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탓에 남보다 더 열심히 배워야 했던 조씨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종일 판소리 연구와 연습에 몰두해 국악계에서도 ‘실력 있는 노력파’로 통한다. 젊었을 때 운동하다 사고를 당해 양쪽 시력을 잃은 조씨는 5년 동안 바깥 출입을 삼가며 좌절과 방황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95년 교회에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최정란(36)씨의 도움으로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판소리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국악을 즐기던 아버지와 친척의 영향을 받아 판소리에 관심을 갖고 있던데다 시력은 잃어도 판소리를 배우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조씨 앞에는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판소리를 배울 수 있겠냐”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장애인이라고 무시를 당할 때마다 더 열심히 판소리를 배웠다. 조씨는 2년 전 겨울 판소리를 잘한다고 소문난 고법 인간문화재를 찾아 전라남도 해남까지 내려가 혼자 자취생활을 하며 북을 잡기도 했다. 이어 국내에서 고법 1인자로 알려진 김청만 국립국악원 예술감독으로부터 고법을 전수받기 위해 지하철로 서울까지 왕래했다. 또 교육이 없는 날이면 조씨는 아침부터 아내의 도움을 받아 무게 18㎏의 북과 녹음기를 둘러메고 1㎞ 떨어진 인근 약수터에 올라가 맹연습했다. 저녁이나 밤 늦게 판소리를 듣고 싶거나 연주하고 싶으면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연습하는 등 남들보다 10배 이상 노력했다. 판소리를 배운 지 만 2년이 지난 지금 조씨는 판소리 고수의 실력을 인정받아 최근 국악 경연대회 고법 부문에서 2차례 입상했다. 현재 그는 오는 9월29일 인천 서구문화예술회관에서 국내 처음으로 열리는 시각장애인 고법 발표회를 앞두고 한창 연습 중이다. 조씨는 “비록 두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는 장애인이지만 자녀에게 아버지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며 “앞으로 장애인과 정상인에게 무료로 가르칠 국악원을 운영하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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