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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법원판결과 현실의 차이

최근 서울행정지방법원은 참여연대가 항생제를 과다 처방한 병원명단 등을 공개하라며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시민단체가 요구한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정보공개 대상은 지난 2001~2004년 병원별 급성상기도감염(단순 감기) 환자에 대한 항생제 사용률을 평가한 결과 중 최고 등급과 최하위에 속한 의료기관의 수와 명단 등이다. 이번에 재판부가 판결을 통해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준 것은 의학지식을 토대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의 경우 전문성과 자율성은 존중돼야 하지만 사람의 신체와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의료 소비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환자의 알권리 충족 측면에서 보다 앞선 판결로 평가된다. 그렇다고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전문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의료인의 입장에서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판결이다. 항생제라는 것은 사용률이 높고 낮음과 관계없이 질병의 상태를 고려해 처방하는 약이다. 예를 들면 상대적으로 강도 높은 항생제를 처방했다고 잘못된 처방이라고 할 수 없다. 질병의 상태에 따라 어떤 증상은 확실한 강도로 처방 해야 오히려 내성을 키우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나라 의료기관에서는 병원별로 치료를 받는 환자의 성향이 크게 다르고 감기라도 하나의 질병군으로 분류하기 곤란한 측면이 많다. 의료기관별로도 암 환자를 많이 진료하는 곳이 있고 정형외과ㆍ척추전문병원 등에서는 수술 환자가 대부분이다. 이런 병원에서 항생제 처방은 다른 병원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 질병뿐만 아니라 병원별 편차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항생제 처방률만 공개한다면 선의의 의료기관에 대해 이미지를 먹칠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단순감기인지 아닌지, 다른 질병과의 연관성에 대한 여부 판단 역시 의료인의 경험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누가 마라톤의 거리를 묻는다면 “42.195㎞이다”고 답할 수 있지만 질병은 그렇지 않다. 보건당국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면서도 환자와 의료인간 불신감을 조성하지 않도록 적절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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