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휘발유 가격신고제 폐지를”/주유소간 가격인하경쟁 치열

◎업계 사전담합방지 명분없어지난달 30일 H정유. 업무팀 K차장과 M대리는 일찌감치 과천의 통상산업부로 출근해 대기상태에 들어갔다. 회사에서는 영업·기획·업무팀의 마라톤 회의가 열렸고 경쟁사의 동향을 알리는 전화벨은 쉴새없이 울려댔다. H사의 혼란은 석유류 판매가격을 통산부에 신고하는 과정에서 매월 말일 되풀이되는 풍경이다. 가격산정은 한 사람이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이것을 신고할 때는 경쟁사보다 단 1원이라도 낮게 하기 위해 이렇게 북새통을 이룬다. 벌써 9개월째다. 신고마감 시간을 10분 남겨놓은 하오 5시50분. 『B사가 8백24원에 신고했다』는 정보가 영업팀에 다급하게 전해졌다. 긴급 간부회의가 소집됐다. H사는 마감 1분전인 5시59분에 결정을 내려 현지에서 대기중인 직원에게 연락했다. 『우리도 8백24원이야.』 정유업계 사람들은 이 혼란을 넘기면 또 한달이 갔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이렇게 「노력」해서 책정한 가격은 일선 주유소에서 외면당한다. 주유소들이 가격경쟁을 벌이면서 소비자가격은 8백∼8백24원까지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다. 『지켜지지도 않는 가격신고를 위해 언제까지 이렇게 소모적인 일을 해야 합니까. 시장에 적용되지도 않는 가격을 정부가 거머쥐고 있는 것이야 말로 규제입니다.』 한바탕 소동을 벌인 업무팀의 한 관계자는 이 혼란이 무의미하다며 이같이 되묻는다. 지난해까지 정부가 완전통제하던 유가는 올들어 가격자유화 조치로 민간에 넘겨졌다. 그러나 통산부는 업체간 가격담합 우려가 있다며 사전신고제라는 임시조치를 내렸다. 이 조치로 유가는 지난 6월까지 시행 3일전에 신고토록 했고 7월부터는 하루전 신고로 바뀌었다. 그런데 가격신고제가 실시된 지난 9개월 동안 담합에 의해 가격이 올라간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오히려 치열한 값내리기 경쟁으로 매달 한차례씩 낭비성 눈치싸움을 벌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 『국내 석유류시장의 경쟁력 제고라는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불필요한 낭비를 초래하는 가격신고제를 폐지해 실질적인 가격자유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민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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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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