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지방선거 매니페스토

후진국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각종 구호가 넘쳐난다는 점이다. 정치적인 목적, 또는 국민을 얕잡아보는 데서 비롯되는 계도용 구호가 대부분이지만 기관의 존재를 알리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과시용 구호들도 적지 않다. 구호라면 한국도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주요 관공서에는 언제나 큼지막한 글자의 구호가 걸려 있다. 세금으로 운용되는 공공기관 이라면 당연한 일인데도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듯 친절과 봉사를 다짐하는 내용의 구호가 경쟁적으로 내걸려 있다. 기관장이 바뀌면 으레 구호도 달라진다. 구호의 홍수 속에 산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문제는 구호는 그저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구호를 내건 쪽이나 그것을 보는 쪽이나 별로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장식용 구호를 만들고 설치하는 비용만 절약해도 상당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말뿐인 구호·헛공약 난무 확성기에서 고함이 울려퍼지고 곳곳에 큼지막한 얼굴과 구호들이 담긴 현수막들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서 선거철임을 실감하게 된다. 유권자들의 관심과 시선을 끌기 위해 최대한 좋은 이미지의 사진과 화려한 구호들이 난무한다. 멋진 표정과 달콤한 정치 구호들이 담겨 있는 현수막만 보고 판단한다면 누구를 뽑더라도 좋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일상적인 구호들과 마찬가지로 선거용 구호 역시 구호일 뿐이다. 구속력이나 구체성이 없는 구호만으로 지역 살림을 꾸려갈 대표들을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직도 어설픈 풀뿌리 민주주의를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라도 유능하고 정직한 대표를 뽑기 위한 유권자의 관심과 냉정한 판단이 요구된다. 아쉽게도 이번 지방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매우 낮다고 한다. 지방선거가 실종됐다는 개탄도 나온다. 지방자치를 실시한 지도 꽤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이 국민들의 관심은 여전히 중앙 무대에 쏠려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도 몰라보게 커졌다. 그만큼 국민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선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이번 선거부터는 그동안 무보수였던 지방의회 의원들에게 적잖은 금액의 보수가 주어진다. 그만큼 국민의 부담이 커지게 되는 셈이다. 지역과 주민을 위해 봉사하기보다는 적당히 해외 여행이나 다니면서 세금이나 축내는 꾼들이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거 때는 유권자를 상전 모시듯 굽신거리다가 선거가 끝나면 언제 봤느냐는 식으로 돌변하는 기회주의자들도 걸러내야 한다. 특히 이번 지방의원들이 유급제가 되면서 유권들의 냉담과는 달리 후보들간의 과열 경쟁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황당무계한 헛공약들도 많다는 지적이다. 실현 가능성도 없는 일들을 약속해 표부터 얻고 보자는 얄팍한 정치술이 판치고 있는 셈이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새롭게 터져나오는 사건과 이슈에 정신이 팔려 선거 때의 공약쯤은 까맣게 잊어버리는 허점을 이용하려는 속셈이다. 선거 의미·중요성 인식부터 우리나라는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려 하고 있는 세계 11대 경제 대국이다.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정치 수준도 경제력에 걸맞게 한단계 올라서야 한다. 그러자면 연고에 얽매이지 말고 후보들의 자질과 능력, 인격 등을 냉정하게 따져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성숙된 유권자 의식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한다. 잘못된 선택을 해놓고 후회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신중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정치 수준은 흔히 국민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한다. 지방자치라고 다를 게 없다. 지방선거는 지역 살림을 꾸리는 주민 대표를 뽑는 것이다. 중앙 정치 무대도 중요하지만 지방화, 분권화 시대를 맞아 지방선거의 의미와 중요성도 날로 커지고 있다. 형식적인 지방자치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지역 발전과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지방자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우선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부터 가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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