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나의 일 나의인생/나춘호 예림당회장] 64. ‘페레비센스’ 회장과 인연

IPA에서 한국은 오래된 회원국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단순한 회원국에 머물러 있다 보니 발언권이 약해 우리에게 유익한 안건을 제기해 통과시킬 만한 힘이 없었다. 총회에는 부지런히 참석했지만 제대로 활동을 못한 탓이었다. 기왕에 회비를 내고 참가했으면 회원국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했다. 더군다나 IPA같이 국제적으로 공인 받은 영향력 있는 큰 기구라면 회원으로서 기본권리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더 활발한 참여를 통해 영향력까지 확대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국가별 이해관계로 대립할 때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되고 나아가 국가 위상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그렇지만 국제 기구에서도 개인간의 인맥이나 친분 없이는 제대로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을 스페인 IPA 총회에서 절실히 느꼈다. IPA 총회에서 가장 돈독한 관계를 맺은 사람은 IPA 부회장이자 스페인 출협 회장인 페레비센스였다. 그는 내가 식사 초대를 한 다음 날 답례로 우리 일행 모두를 초대해 주었다. 그렇게 서로 오가며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분이 쌓이고 개인적으로도 친밀한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바르셀로나는 고전적인 도시였다. 도시 전체가 유적과 유물로 가득할 만큼 고색창연한 박물관 같은 도시였다. 세계 제일의 건축 예술가로 추앙 받는 가우디의 건축물도 곳곳에 있어 모두가 관광 명소였다. 우리는 페레비센스 회장 안내로 IPA 주요 인사들과 또는 각국 대표들과 함께 바르셀로나 시가지 관광도 하고 대규모 와인회사도 둘러보면서 친분을 다졌다. 나는 페레비센스 회장의 배려로 IPA 회장단이나 상임이사들과의 비공식 모임에도 부부가 함께 특별히 초청 받아 IPA 주요 인사들과 스스럼없이 교분을 트게 됐다. 그러면서 새삼스럽게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국내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특히 국제기구에서는 개인적인 친분과 신뢰야말로 모든 활동의 근원이 되고 배경이 된다는 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페레비센스 회장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친구가 된 것은 대단한 행운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페레비센스 회장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것은 차기 IPA 회장이 되는 것이었다. 2000년 제26차 아르헨티나 IPA 총회에서 페레비센스는 IPA 회장이 됐다. 그러나 그에게만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도 IPA와 관련된 꿈이 있었다. 첫번째 꿈은 한국이 IPA 총회를 유치하는 것이었다. 그 꿈은 2008년 IPA 총회의 서울 개최로 이루어졌다. 두 번째 꿈은 IPA 상임이사가 되는 일이었다. IPA에는 100여 개 국가가 가입해 있지만 실제로 IPA를 움직이는 것은 상임이사들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2000년 8월 중국에서 개최된 APPA(아시아태평양출판협회) 총회에서 나는 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러자 2001년 4월 페레비센스 회장으로부터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개최되는 IPA 상임이사회의에 옵서버로 참석해 달라는 초청을 받아 가게 됐다. 그리고 상임이사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IPA 상임이사가 되자 한국도 자연스럽게 상임이사국이 됐다. IPA 상임이사회의는 1년에 2∼3회 유럽 지역을 주축으로 아프리카, 미주 등 각국을 돌며 개최되어 세계 출판계의 제반 문제를 논의하고 결정을 내린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1년이면 두세 차례 세계 각국을 다니며 국제 출판계의 제반 문제를 논의하고 한국 출판계의 이익을 위해 도움을 줄 수도 있게 됐다. 14명의 상임이사 모두가 부부와 함께 한 호텔에서 숙식을 함께 하며 회의와 세미나를 하다 보니 서로가 이해하고 신뢰하는 가까운 친구가 됐다. 그 중에서도 IPA 페레비센스 회장과의 개인적 친분과 유대는 자못 각별한 바가 있다. <문석호(민주당 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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