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저해하는 장치 일체불용 의지/“정부와 어느선까지 절충될까” 관심한국은행이 26일 중앙은행 제도와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대한 독자안을 내놓음으로써 이제 정면충돌이 불가피하게 됐다.
지난 16일 정부안 발표이후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과 김인호 경제수석은 꾸준히 경제계, 학계, 언론계인사들과 접촉하며 정부안의 당위성을 홍보해왔다.
한은이 독자안 발표를 계기로 본격적인 세확보전에 돌입함으로써 한은법 논쟁은 자칫 편가르기의 양상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한은의 독자안에서 주목할 부분은 「금융감독기구 통합 반대」.
이는 한은이 수용해왔던 금융개혁위원회안마저 부정하는 것으로 그만큼 재정경제원에 대한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감독기관 통합을 명문화한 금개위안을 받아들인다고 했다가 이제와서 통합반대를 내세울 경우 「밥그릇 싸움」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현실을 잘 알면서도 『그만큼 우리의 의지가 강하다』는 선언에 무게를 둔 셈이다.
비상대책회의 관계자는 이와관련, 『한은은 원래부터 통합에 반대했으나 대승적 차원에서 금개위안을 수용한 것 뿐』이라며 『정부안에 금개위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만큼 우리도 감독기관통합을 거부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감독기관이 통합되더라도 동일한 감독기준으로 은행, 증권, 보험을 규제할 수 없어 사실상 「한지붕 세가족」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것.
또 금통위를 한은 내부의 최고의사결정기구로 규정한 것은 금통위의장과 한은총재의 겸직이라는 현상은 마찬가지지만 정부안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정부안은 금통위를 한은으로부터 분리, 금통위의장이 한은 총재를 맡도록 돼있으나 한은은 『재경원이 앞으로도 금통위를 통해 통화신용정책에 계속 영향을 미치려 한다』며 이같은 독자안을 내놓았다. 한은은 재경원장관과 금통위의장간 정책협의를 법제화가 아닌 관행으로 정착하도록 규정했다. 「독립」을 저해하는 장치를 일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외에 일반은행에 대한 한은의 인가, 경영지도, 규제, 검사, 제재기능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조항 역시 금개위안을 전면 부정하는 부분이다. 반면 외화여신 및 외국환포지션 관리업무, 지급결제제도 운영, 제2금융권의 은행유사업무에 대한 지급준비금 부과 등 한은에 유리한 금개위안은 전적으로 수용했다.
이처럼 한은의 독자안이 나옴에 따라 앞으로의 관심은 정부안과의 절충가능성에 쏠리게 됐다.
당장 오는 30일 열리는 금융계 원로 오찬모임은 한은의 이런 요구가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날 모임은 강부총리 등 정부안에 합의한 4인과 전직 각료와 금융계, 학계인사 18명이 자리를 함께 한다. 정부측이 이런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우선은 정부와 한은의 갈등을 조기에 매듭짓겠다는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물가관리목표를 못지켰을 때 한은총재를 해임하도록 한 조항에 대한 반발이 워낙 거세 재경원이 이를 포기하는 선에서 절충안을 마련할 가능성이 높다. 한은에 나눠줄 떡 하나쯤은 갖고 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재경원은 내달초 임시국회 개회가 확정됨에 따라 중앙은행법 등 금융개혁 관련법안을 확정, 국무회의를 거쳐 내달 24일 국회에 법안을 제출한다는 스케줄을 마련해놓고 있다.
이와 관련, 한은 직원들은 관련법안 개정작업에 참여할 것인지를 놓고 목하 고민중이다. 한은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경원이 독자적으로 만든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의 부담도 만만치 않고 그렇다고 무작정 들러리를 설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고민과 관계없이 정부측이 당초안을 강행하더라도 입법까지 과정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현실에 위안을 삼는 분위기도 강하다.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후에 공청회라는 절차가 남아있다. 야당측이 정부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다 심의를 맡게될 국회 재정경제위가 금융감독기구의 행정위이관을 달갑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에서 중앙은행제도와 금융감독체제 개편문제는 상당한 논란을 거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88년과 95년에 벌어졌던 1, 2차 한은법파동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손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