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부자들의 민주주의는 경제의 敵

지금부터 100년 전 염세주의적 경향의 독일 철학자 오스왈드 슈펭글러는 `서양의 몰락(Decline of the West)`이라는 책을 출판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역사는 슈펭글러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흘렀다. 지난 20세기 서구의 경제는 몰락하지 않고 과학ㆍ기술ㆍ세계화에 기반해 그 어느 때보다 번창했다. 인구폭발로 식량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맬더스와 다윈의 수확체감의 법칙(The Law of Diminishing Returnsㆍ생산요소 중 자본과 토지의 투입량을 일정하게 하고 노동의 투입량을 증가시키면 추가투입 노동량 1단위에 대한 생산물의 증가분이 점차 감소한다는 원칙) 역시 틀린 것으로 입증됐다. 이른바 서양으로 불리는 유럽과 북미인들은 현재 좀더 풍요롭고 좀더 긴 삶을 영위하고 있다. 50년대 이후 태평양 연안 아시아 국가들도 기적적인 경제성장에 동참하게 된다. 슈펭글러, 칼 막스, 아놀드 토인비는 서양에서 퇴조하는 것 중 중요한 한가지를 보지 못했다. 바로 출산율이다. 출산율 하락은 복잡한 도시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이에 적응하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프랑스 고학력 중산층 가정에서는 1900년부터 출산율이 급격히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같은 변화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일본은 서양 국가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은 출산율이 가장 낮은 국가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한국과 중국도 마찬가지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한때 출산율이 높았던 이탈리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벨상 수상자인 스웨덴의 알바 마이달가는 이미 70년 전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인구가 감소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아 당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세계의 지도자라고 불리는 미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잠시 동안 이 같은 역사적 추세를 거슬렀을 뿐 지속적인 출산율 감소에 직면해 있다. 6명에 달하는 필자의 아이들도 출산율이 급증했던 45~60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다. 21세기 들어 이들 베이비붐 세대가 서서히 현역에서 은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6명의 아이들 중 그 누구도 6명의 손주를 낳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이들 베이비붐 세대는 현재 이중적인 모순에 빠져 있다. 한편으로는 연금으로 생활해야 하는 은퇴 생활자가 급증하고 있는데 그들을 부양해야 할 경제활동인구는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런 얘기를 다시 끄집어내는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를 잘 모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만약 부시 대통령이 이 같은 과학적 사실을 알고 있다면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현 감세정책을 정반대로 바꿨을 것이다. 현역에서 은퇴해 자산소득으로 살아가는 나이든 연령층이 미래의 주요한 세원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시의 현 감세정책과 인구의 구성비 변화를 봤을 때 지금부터 15년 뒤 미국정부는 자신을 지탱할 만한 충분한 재정을 확보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인들은 나이가 들면 소비만 하지 저축은 하지 않는다. 이것이 현재 미국의 상황이다. 도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81년 취임한 후부터 지금까지 미 정부의 재정은 대부분 가난한 국가들의 저축을 통해 충당돼왔다. 즉 개발도상국 국민들은 무역흑자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으며 반대로 미국은 천문학적인 적자를 보면서 소비를 해온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과 세계경제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시 대통령은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세금감면이 과학을 빠른 속도로 발전시킬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만약 미래의 경제학자들이 95~2000년도에 이뤄진 생산성 향상의 원인을 찾는다면 아마도 캘리포니아공대ㆍMITㆍ버클리 등의 교육시스템이 1등 공신이었음을 발견해낼 것이다.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변호사나 회계사 사무실의 책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이는 단지 미국만이 들어야 할 메시지는 아니다. 한국도 부자들의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의 친구가 아닌 적이란 점을 깨달아야 한다. 잘 통제된 기업지배구조가 경제적 발전단계와 상관없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폴 새뮤얼슨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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