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인공호흡기를 뗄 경우 사망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의사가 가족의 요청에 못 이겨 퇴원을 허용한 행위는 살인방조죄로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대법원 첫 확정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보호자나 환자가 원할 경우 환자의 퇴원을 허락, 사실상 죽음을 방치해온 의료계 관행에 제동을 건 것으로 퇴원을 마지못해 허용한 의사까지 처벌받는다는 점을 명확히 한 데 의미가 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재윤 대법관)는 29일 인공호흡기에 의존, 생명을 유지하던 환자를 보호자 요구로 퇴원시켜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의사 양모씨와 3년차 수련의 김모씨에 대해 각각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피해자를 퇴원시키면 보호자가 보호의무를 저버려 피해자를 사망하게 할 수 있다는 미필적 인식은 있었다”고 밝혔다.
양씨와 김씨는 지난 97년 서울 B병원 근무 중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던 환자 김모씨를 “치료비가 없다”는 아내 이모씨의 요구에 따라 퇴원시키고 인공호흡기를 제거,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기소됐다. 아내 이씨는 숨진 남편 김씨가 수술 후 상태가 호전될 것이라는 의사들의 말에도 불구, 17년 동안 무위도식하며 상습적으로 술에 취해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데 앙심을 품고 강제 퇴원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상고를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