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전의 강원용(오른쪽) 목사가 지난 75년 1월에 크리스챤아카데미 농촌지도자 지도력 개발과정에서 강의하는 모습. 평화포럼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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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海 강원용 목사 타계
한국 교회발전·사회민주화 한평생 헌신
홍병문 기자 hbm@sed.co.kr
17일 오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강원용 목사의 빈소를 찾은 김수환 추기경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연합뉴스
생전의 강원용(오른쪽) 목사가 지난 75년 1월에 크리스챤아카데미 농촌지도자 지도력 개발과정에서 강의하는 모습. 평화포럼 제공
"양극 대립과 갈등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이해를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가야 한다."
현실주의적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국 교회 발전과 사회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여해(如海) 강원용 경동교회 명예목사가 17일 향년 8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강 목사는 10일 강남삼성병원에 요양차 입원한 뒤 11일 오전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며 그 동안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연명해왔다.
함경남도 이원군에서 출생한 고인은 1931년 개신교 내 진보 교단인 기독교장로회에 입교했다. 일본 명치학원(東京明治學院) 영문학부를 졸업한 뒤 한신대와 미국 뉴욕 유니언 신학대에서 학사학위를, 1962년 캐나다 매니토바대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신대를 졸업한 이듬해인 1949년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이후 경동교회에서 40여 년간 목회 활동을 해 왔다. 1930년대 중반 간도 용정에서는 윤동주 시인, 문인환 목사 등과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내며 농촌계몽활동을 펴기도 했다.
50년대 중반 미국으로 유학 길을 떠난 강목사는 유학생활에서 뉴욕유니온신학대학에서 스승 폴 틸리히와 라인홀드 니이버 교수와 만나 현실주의적 기독교 사상을 배운다. 극한 대립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않고 상호이해를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간다는 현실주의 기독교 사상은 이후 그의 활동의 정신적 뼈대로 자리잡았다.
1960년대 초반 미국에서 귀국한 뒤 강 목사는 종교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정치ㆍ사회ㆍ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 넓은 활동을 펼친다.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의 산파역을 하며 총무와 이사장으로 일했고 1963년에는 크리스챤 아카데미(대화문화아카데미 전신)를 세웠다. 1965년에는 6대 종교가 한자리에 모인 '종교간 대화모임'을 이끌기도 했다.
또한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을 역임하며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외국의 지원과 협력을 요청하며 교회와 사회 사이의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했으며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 의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과 세계 종교의 교량 역할을 했다. 종교 간 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그는 국제적 평화상인 니와노(庭野) 평화상과 만해 평화상을 수상했다.
문화예술분야에서는 방송윤리위원장, 방송위원장, 방송개혁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방송의 공정성과 자율성 확보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 같은 다양한 사회 활동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내 진보 세력으로부터는 박정희 정권 하에서 방송윤리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지낸 것을 비롯해 5, 6공 군사 정권에 직ㆍ간접적으로 참여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저서 '새시대의 건설자''폐허에의 호소''자유케 하는 진리''인생과 종교''믿는 나와 믿음 없는 나''빈들에서''역사의 언덕에서' 등을 남겼으며 국민훈장 모란장, 국민훈장 동백장, 체육훈장 청룡장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기독교 장로회 여신도회 회장을 역임한 부인 김명주(88) 씨를 비롯해 장녀 혜자, 차녀 혜원, 장남 대인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21일.
입력시간 : 2006/08/17 1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