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그레이트 체인지 코리아] 2부 ④ 위기 극복의 정신…고난을 이겨내다

'섣부른 축배' 보다는 "위기는 반복된다" 교훈 되새겨야<br>오일쇼크·외환 위기, 도전 의식·국민 결집력으로 극복<br>경기 회복 불구 '고용없는 성장'등 후유증도 만만찮아<br>일자리·빈부격차 해소 위한 위기대응 시스템 구축 시급


"지난 1970년대 석유파동, 1990년대 말 외환위기도 극복했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번 위기도 한두 해가 지나면 풀릴 겁니다. 이럴 때일수록 기죽거나 위기에 휘둘리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배후의 뜻을 냉철히 봐야 합니다." 지난 봄 열반에 든 법정스님의 말처럼 대한민국 경제개발 60년은 도전과 기회의 연속이었다. 도전과 시련을 극복한 힘은 뒤이어 또 다른 성공의 역사를 만들며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쏟아지는 찬사는 '강력한 견제'를 동반한다는 점을 잊고 있다. 위기는 반복된다. 잠깐의 '자아도취'는 반복되는 위기의 함정에 빠져 과거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결과를 낳는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국제금융 정책라인을 이끌었던 김용덕 전 금융감독원장은 "갈수록 금융위기 발생주기가 짧아지고 폐해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며 "위기의 원인과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위기가 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국운(國運)은 위기(危機)에서 온다=외환위기 하면 보통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시절을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나라 외환위기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첫 번째 외환위기는 1967년. 아직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이지 못했던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시작된 막대한 산업기반시설 투자는 경상수지 적자폭증으로 이어졌다. 당시 적자는 대일청구권 자금, 베트남 파병이라는 역사의 아픔을 대가로 치렀다. 위기에 이은 기회는 모래사막에서 찾아왔다. 1974년 1차 석유파동(오일쇼크)은 한국경제를 파산위기까지 내몰았다. 1973년 10월부터 1975년 여름까지 한국경제는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감산과 가격 4배 인상으로 극심한 물가파동에 시달렸다. 당시 한국이 지불한 원유값은 1973년 3억달러에서 이듬해 8억달러로 급증했다. 경상수지 적자는 20억달러가 넘었다. "오일쇼크로 발생한 외환위기의 처방은 오일쇼크로 부자가 된 중동에서 찾으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주문은 1976년 현대건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따낸 '주베일 항만공사'라는 역작을 탄생시켰다. 1975년 여름 박 대통령은 당시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을 청와대로 불렀다. "달러를 벌어들일 좋은 기회가 왔는데 일을 못하겠다는 작자들이 있다. 만약 임자도 못할 것 같으면 나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자초지종을 듣고 중동으로 출발한 정 회장은 5일 만에 돌아와 박 대통령에게 이런 보고를 했다.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공사를 하기에 제일 좋은 지역이다.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다. 건설에 필요한 모래와 자갈이 현장에 있으니 자재 조달이 쉽다." 무모하리만큼 저돌적인 도전은 위기를 기회로 국가의 운을 트이게 하며 2010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수주의 주춧돌이 됐다. ◇섣부른 축배는 위기를 부른다=1996년 12월, 20년 전 국민소득 1,000달러에 불과하던 대한민국이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어서며 선진국의 모임이라고 여겨지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OECD 가입이라는 이벤트로 국민 모두는 선진국 진입의 장밋빛 꿈에 젖게 됐다. 10개월 뒤 찾아올 뼈가 시릴 정도의 추위는 예상도 못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경제의 가장 큰 위기로 평가된다. 외환위기의 원인은 우선 대내적으로 관치금융과 과도한 기업의 외형경쟁에 따른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이다. 1997년 1월 한보철강, 3월 삼미그룹, 4월 진로그룹으로 이어진 연쇄파산은 10월 기아차의 법정관리로 극에 달했다. 여기다 태국에서 시작된 유동성 위기는 필리핀ㆍ인도네시아ㆍ말레이시아 등을 거쳐 1997년 12월3일 IMF로부터 55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는 치욕을 겪게 된다. 외환위기 당시 경제성장률은 1996년 7%, 1997년 4.7%에서 1998년 -6.9%로 곤두박질친다. 1998년에는 민간소비가 -13.4%, 건설투자와 설비투자가 각각 -12.4%, -42.3%를 기록하며 극심한 내수침체를 겪는다. 특히 환율급등으로 소비자물가는 7.5%를 기록하며 저성장ㆍ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기도 했다. ◇위기의 진폭과 강도는 커진다=외환위기 이후 10년,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1998년과 달랐다. 위기에 대한 내성으로 다져진 체력(대외건전성ㆍ외환보유액 등)은 강해졌지만 10년 뒤 다시 찾아온 위기 때는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선진국들의 경제성장률이 일본을 제외하고 높은 성장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2008년 위기로 선진국은 물론 전세계가 침체에 빠져들었다. 부동산 가격 장기하락과 신용경색이 동반된 경기침체는 1929년 대공황 이후 처음이다. 혹자는 외환위기 극복의 특징을 '역동성'이라고 말한다. 나라가 어려울 때 결코 등을 돌리지 않은 국민들의 자발적인 위기극복 의지가 힘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운동으로 모은 금은 200톤이 넘었으며 금액으로는 22억달러에 달했다. 문제는 위기극복을 국민들의 역동성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위기의 사이클은 이제 한층 더 자주 강한 강도로 찾아오고 있다. 여기다 재정건전성 악화, 고용 없는 성장 등의 빠른 경기회복에 따른 후유증은 냉정한 위기대응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 신후식 국회예산정책처 거시경제분석팀장은 "외환위기 이후보다 경제주체들의 건전성 지표는 좋아졌지만 대외여건은 크게 악화됐다"며 "수출은 더 이상 우리 경제 위기극복의 만능 키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출감소를 예상한 내수부양 정책과 일자리 창출, 또 빈부격차를 줄이는 동시에 저소득층ㆍ서민층에 대한 긴급복지 등을 통한 사회안전망 구축 등 위기대응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IMF 권고에 충실…한국은 패배자?
환란중 대표기업들 외국 자본에 넘어가고 실업 폭풍
말聯은 권고 거부, 외환유출 통제로 자력 극복 '대조'
분명히 대한민국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의 성공모델로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성공이 아무런 후유증도 없는 완벽한 성공일까.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한국이 2008년 금융전쟁에서 패배했다고 분석한다. 신 교수는 "이번 세계 금융위기는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받아들인 국제통화기금(IMF)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실패작이었다는 사실이 입증된 계기"라며 "IMF 패러다임이 유일하게 내세웠던 논거는 '금융안정성'이었지만 한국은 이번에도 다시 금융위기를 겪었다"고 지적했다. 결국 외환위기 당시 IMF의 주문에 따른 구조조정은 어디까지나 투기꾼의 입맛에 맞는 성공이었다는 논리다. IMF도 외환위기 극복 10년이 지난 지금 당시 구조조정 모델이 100% 성공적이지는 않았다고 자인한다. 도미니크 스토로스칸 IMF 총재는 최근 대전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외환위기 당시 필요 이상의 고통을 안겼다"며 IMF의 구제금융 처방이 잘못됐음을 시인했다. 왜 외환위기 당시 정답으로만 여겨졌던 IMF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 10년이 지난 지금 쏟아지는 것일까. 1997년 당시 우리나라와 똑같은 외환위기를 겪으며 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말레이시아. 해외자본에 의한 성장이 한계를 맞으며 동일한 위기를 겪었지만 말레이시아와 한국 정부의 위기극복 해법은 전혀 달랐다. 한국은 IMF의 권고사항을 충실히 따랐다. 금리를 올리고 부실은행과 기업을 합병 또는 정리하며 인력을 감축했다. 후유증은 컸다. 대표기업이 외국자본에 넘어갔고 실업의 폭풍은 눈물의 외환위기를 겪게 했다. 말레이시아는 어땠을까. 말레이시아는 당시 외환위기를 투기자본의 일시적인 시장교란으로 판단해 IMF의 권고안을 거부했다. 대신 말레이시아에 들어와 있는 외환 유출을 통제하고 해외의 자국통화를 회수하며 고정환율제를 택했다. 세계 경제전문가들이 모두 비웃는 가운데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는 조지 소로스를 '사악한 투기꾼'이라고 부르며 말레이시아에 발도 못 붙이게 했다. 어려운 경제논리보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자. 한국은 당시 유학생들을 조기 귀국시키는 한편 한시적으로 교육제도를 바꿔 국내 대학으로 끌어들였다. 반면 마하티르 총리는 기업에 유학생들이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지 10년이 지났다. 성공모델이라는 자아도취에 빠지기보다보다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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