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이건희 회장 귀국의 배경과 향후 과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4일 해외체류 5개월만에 귀국한 것은 국내 사정이 여전히 좋지 않지만 도저히 더이상은 해외에서의 '원격경영'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도약하느냐의 갈림길에 들어서 있는 삼성의 처지는 잠시의방심이나 여유도 허용할 수 없고 그만큼 이 회장 앞에 놓인 과제가 크고 무거움을그의 '전격 귀국'이 반증하는 측면도 있다고 재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이 회장이 해외에 머무는 동안 삼성은 안기부 'X파일'에서 드러난 불법 정치자금 제공의혹,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개정 등을 통한 정치권의 지배구조 개선압박, '삼성 공화국론(論)'으로 대변되는 사회일각의 '반삼성 분위기' 등으로 인해임직원들 사이에서 '창업 60년만에 최대 위기'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곤경을 겪었다. 더욱이 검찰이 수사해온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배정 사건은 핵심 관계자에 대해 법원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내린 가운데 검찰이 이 회장 일가의 계좌추적까지 벌이는 '간단찮은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회장은 이 모든 상황을 해외에서 지켜보면서 여론이나 국내상황이 좀더 우호적인 방향으로 반전되기를 기다려 왔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견상 삼성 안팎의 상황에 크게 개선된 점은 없어 보인다. 'X파일' 사건 수사는 이 회장을 서면조사한 뒤 불기소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지만 이를 통해 드러난 삼성의 불법자금 제공의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향후 이 사건 추가수사를 위한 특별검사제가 도입된다면 불똥은 어디로 튈지 상상하기 어렵다. 에버랜드 CB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당장 이 회장을 소환할 계획은 없다고밝혔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볼 때 이 회장이 어떤 형태로든 조사를 받지 않고서는사건이 마무리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 처럼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이 전격 귀국을 단행한 것은 '원격경영'의 한계가 날로 뚜렷해진 반면 삼성 안팎의 상황은 하루하루가 그의 결단을 요구할만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삼성과 재계 관계자들은 풀이하고있다. 이 회장은 해외체류 중 그룹 살림의 책임자인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부회장)을2주에 한번꼴로 불러 주요 경영현안에 대해 보고를 받고 지시사항을 전달해 왔지만세세한 내용까지는 챙기지 않더라도 대면(對面)보고와 지시를 선호하는 그의 스타일을 감안할 때 많은 한계를 느꼈을 것이라고 삼성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더욱이 삼성이 놓여 있는 상황은 국내에서는 '사면초가'라고 불러도 좋을만큼어려운 형편이고 국외에서는 '삼성 타도'를 기치로 내건 경쟁업체들이 연합전선을형성하고 있어 삼성 임직원들의 위기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든 위기와 난국 돌파의 주역은 역시 이 회장 자신이 될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이 회장이 귀국 후 시급히 착수해야 할 일로는 '반 삼성' 분위기를극복하고 지배구조 등을 둘러싼 의혹과 비판에 대처하기 위한 해법을 찾는 일이라고재계 관계자들은 밝혔다. 특히 올해 64세에 달한 본인의 나이와 여러 여건을 감안할 때 이제는 경영권 승계에 관한 입장을 정리하고 이에 필요한 정지작업에 나설 때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삼성그룹의 앞날에 관해서도 이 회장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 이 회장 자신이 해외에서 발표한 신년사를 통해 "해외 곳곳에 제2의 삼성을 건설하고 세계 1등제품을 더 늘려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잡아야 하며 이를 위해 의사결정과 기술개발을 더욱 빠르게 하고 디자인, 브랜드, 이미지와 같은 소프트 경쟁력을 높여나가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이 같은 목표의 달성을 위해 구체적 전략을 마련하고 실행해나갈 주체 역시 이회장 자신일 수밖에 없다. 특히 30년, 40년 후에도 삼성이 글로벌 일류 기업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기존의 1위를 지키는 것 못지 않게 '미래의 씨앗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이회장이 집중적으로 고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X파일' 사건과 '삼성공화국론' 등으로 상처받고 흔들리는 삼성인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심기일전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일 역시 이 회장에게 남겨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 앞에 놓인 많은 과제들과 어려운 상황들을 감안할 때그렇지 않아도 밤잠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이 회장에게 불면의 시간이 더욱 길어질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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