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경제 百年大計 교육에서 찾는다] 입학사정관제 정착되려면…

고교교육 내실화·사정관 전문성 강화 필요


이명박 정부 들어 대입제도에서 새로운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점수 위주의 획일화된 선발방식에서 벗어나 학생의 소질과 적성,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을 중시해 뽑는 입학사정관제다. 현 정부 교육정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지만 사실 입학사정관제는 참여정부 시절에 이미 도입이 확정됐다. 지난 2004년 발표된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에 입학사정관제가 포함됐던 것. 정권이 바뀌면서 미처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릴 것 같았던 입학사정관제가 꽃망울을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은 현 정부 교육정책의 입안자로 평가되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이 제도의 신봉자이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황폐화된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 부담을 완화시키며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권을 확대할 수 있는 대입제도로 일찌감치 입학사정관제를 주목하고 국회의원 시절부터 제도도입과 예산지원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현 정부 입장에서 입학사정관제는 대입 자율화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3불(不) 논란을 비켜갈 수 있는 묘안이기도 했다. 대학들이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다양한 유형의 전형을 만들어 여러 가지 잣대로 뽑고 싶은 학생을 뽑도록 하면 평등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대학들이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입시 자율화도 이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점수 위주의 선발방식에 익숙했던 대학들은 주관적 판단요소가 큰 입학사정관제 도입을 주저했으나 정부가 돈을 풀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입학사정관제 지원사업 예산은 2008년 128억원에서 올해 350억원으로 3배 가까이 늘었고 선발인원은 2009학년도 4,000여명에서 2011학년도 3만4,000여명으로 8배 가까이 급증했다. 전체 대입정원의 10%에 해당하는 수치다. 입학사정관제 도입 당시 교육계에서는 대학들이 임의로 고교등급제를 적용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적지 않았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난해 입시에서 고려대와 이화여대ㆍ성균관대 등 상위권 대학들이 특목고 학생에게 유리한 전형을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포함해 운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대학과 고교의 준비가 부족한데 정부가 과속한다' '입학사정관의 전문성이 부족하다' '고액 컨설팅 등 사교육을 오히려 부추긴다' 등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끊이지를 않았다. 김경범 서울대 교수는 "이 같은 문제는 정부와 대학ㆍ고교 간 입학사정관제 도입 속도 차이에서 발생한 것"이라면서 "대학에서 이 제도가 정착하는 데 5년이 걸린다면 일선 고교에서는 그 2배가 걸린다"고 말했다. 정부로부터 예산지원을 받는 입학사정관제 실시 대학을 실태조사한 결과 거의 모든 대학에서 크고 작은 문제점이 발견된 것으로 나타나자 교과부도 '속도조절'과 '질(質) 관리'에 나섰다. 내년부터 선도대학 수와 지원예산을 늘리지 않고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 입학사정관제를 운영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지원예산을 삭감하거나 정원감축 등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또 지나친 특목고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올해 입시부터는 대학별로 입학사정관제로 뽑은 학생들의 학교별 다양성도 공개할 방침이다. 이 장관은 "입학사정관제가 대학 사회에 빠르게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정권과 관계없이 확실하게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점수 위주의 선발방식에서 탈피하려는 대학들의 움직임은 '불가역(不可逆)'이라는 게 교과부의 생각이다. 그러나 대입 완전 자율화가 예정된 2012년 이후 입학사정관제의 운명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지난 수십년간 정부로부터 학생선발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해 갈등을 빚어온 대학들이 기존 대입제도를 여러 차례 무력화시킨 전례에 비춰볼 때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한' 입학사정관제를 용도폐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입학사정관제가 다른 대입 전형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드는 구조여서 정부 지원이 끊길 경우 선발인원을 축소할 수도 있다. 입시전문가들은 입학사정관제를 역대 대입제도 중 가장 진화한 것으로 평가한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내신이나 수능 등 점수 중심의 줄 세우기식 선발에서 오는 폐해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고 무엇보다도 창의적 인재를 요구하는 21세기 인재 패러다임과도 부합하는 선발방식이기 때문이다. 학생과 학부모, 대학과 고교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유일한 대입제도라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 미국에서 이식된 입학사정관제가 한국식 대입제도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고교교육 내실화와 학교 간 학력격차 해소 ▦고교ㆍ대학 간 연계 강화 ▦입학사정관의 전문성 신장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물론 여기에는 대입전형에서 대학의 자율성과 책무성 확대가 전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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