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8월14일 폴란드 그단스크시 레닌조선소. 1만7,000여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다. 요구조건은 자유노조 인정과 1970년 ‘12월 사건’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 건립. 부근 공장도 동조파업에 나섬에 따라 7월 초부터 일부 지역에서 진행된 폴란드의 파업사태는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국면을 맞았다.
파업의 원인은 생활고. 7월8일 루블린 지역에서 돼지고기 공급가격을 80%나 올리자 항공기 공장을 시작으로 파업이 일어났다. 한달 넘게 끌어온 파업은 폴란드 최대의 단위사업장이자 노동운동의 싱징인 레닌조선소에서 더욱 거세게 진행됐다.
조직적인 파업을 주도한 인물은 레흐 바웬사. 반공시위에 대한 무력진압으로 1,500명의 사상자를 냈던 1970년 ‘12월 사건’에도 참가해 1976년 해고된 전기공 출신인 그는 뛰어난 지도력으로 인근 공장의 대표권도 맡았다. 폴란드 민주화의 상징인 ‘솔리더리티(Solidarity)’가 이런 과정에서 생겨났다.
파업이 확산되자 공산당국은 8월 말 손을 들었다. 자유로운 단체 결성과 종교의 자유 보장, 민주주의 활동가 처벌 중단, 언론검열 완화 등의 조건도 받아들였다. 냉전 이후 최초인 일련의 조치는 계엄령 선포와 바웬사 투옥, 노벨평화상 수여, 1988년 대규모 시위를 거친 끝에 폴란드의 공산정권은 물론 공산주의 자체를 끌어내렸다.
폴란드가 가장 먼저 민주주의 진영으로 들어온 것은 노동자들의 단결 때문이었을까. 파업 1년 전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조국방문은 노동자들을 일깨웠다. 폴란드의 권력자 야루젤스키 장군은 계엄령을 발동하면서도 폭압적 방법은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종교의 힘과 대화가 가능한 최소한의 이성을 갖춘 권력이 없었다면 민주화는 지연됐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