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홍현종의 글로벌 워치] 중남미 마지막 시장 쿠바

중앙통제 닫힌 경제속 '개방의 빛'<br>中등과 교류 늘리고 통화정책등 대폭 손질<br>美봉쇄정책 딛고 최근 경제자신감 회복세<br>교육수준 높고 BT산업 강해 '잠재력 무한'


『 열대 속 동토(冬土). 미국 중심의 글로벌 체제 편입을 거부해온 땅-쿠바다. 서방 자본의 손길이 크게 미치지 않았기에 우리에겐 기회일 수 있는 이곳에도 한인들의 숨결은 있었다.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으면서도 국제 사회에서 소외돼 온 ‘카리브해의 진주’ 쿠바 경제를 진단해보는 것은 한인 이민 100주년을 맞아 현지를 돌아본 계기로서다. 』 쿠바의 수도 아바나 내무부청사. 그 벽 전면을 장식한 혁명가 체 게바라 얼굴상 앞에서 만난 쿠바인 페르난도의 말이다. “우리는 사회주의자(socialist)가 아니다. 피델주의자들(Fidelist)이다 .” 쿠바를 끌고 가는 피델 카스트로와 혁명가 체 게바라. 한사람은 살아서, 다른 한사람은 죽어서 쿠바식 사회주의의 지주(支柱)가 되고 있다. 45년 철권 통치의 쿠바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피폐한 중앙통제식 자급자족형 경제 상황 속에 적어도 사회주의의 이념적 패배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 틈 사이에도 한줄기 빛은 분명 새나오고 있었다. 체제는 고수하면서도 개방을 향한 빛이다. 정치적으론 미국 중심의 세계주의에 결코 동참하지 않겠음을 대외적으로 천명했지만 경제 성장을 위한 개별국간 교류는 확대할 조짐을 최근 보이고 있다. 닫힌 가운데서도 틈을 보이는 것이 오늘 쿠바 경제의 상황이다. ▦좌파들의 ‘고향’, 독특한 체제=지난 1959년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 혁명. 이어진 45년간의 흔들림 없는 사회주의 철권통치-좌파 정권과 군부 등이 엎치락 뒤치락, 하루도 편한 날 없던 중남미에 쿠바가 좌파들의 정신적 고향으로 자리잡게 된 큰 이유다. 서구 열강의 오랜 식민시대를 거치며 유럽 아프리카 미국 문화가 혼합된 쿠바는 사회주의의 담을 높게 치고 그 안에서 일부 제한적 시장 경제 체제를 수용한 독특한 통치 형태를 띄고 있다. 특히 쿠바 민족주의 상징적 인물인 호세 마르티와 혁명가 체 게바라를 현존 인물인 카스트로와 묶어 쿠바인들의 자유 의지에 따른 정신적 지표로 삼고 있는 점은 유사 체제인 북한식 유일 우상화와는 다른 차원으로 비쳐지는 대목이다. 교육과 의료는 사실상 무상으로 국민들의 민도(民度)가 다른 여타 중남미 국보다 높은 점이 쿠바를 눈 여겨 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악 상황은 벗어난 경제, 소련 자리엔 중국이=문제는 경제다. 혁명이래 쿠바를 가장 크게 옥죄어 온 건 지난 1962년 이래 시행돼온 미국의 대(對) 쿠바 봉쇄 정책. 비효율적 중앙통제 경제정책에다 금수조치로 인한 타격이 경제를 피폐 시켰지만 그럼에도 향후 잠재력 만큼은 평가할 만 하다. 원래 쿠바 혁명 당시 쿠바는 라틴 아메리카 세번째 경제 규모였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냉전이 끝나며 소련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경제는 단박에 곤두박질 쳤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을 통해 경제 살리기를 시도했지만 미국의 경제 봉쇄정책이 무엇보다 걸림돌이 됐다. 그러나 그런 조치도 미국내 쿠바인 등 국내외 여론에 밀리는 데다 최근 베네수엘라와 중국 등이 쿠바와의 교류를 대폭 확대하고 있어 더 이상의 압박은 되지 못하고 있다. 또 2002년 이후 구조조정 등을 통해 쿠바 경제는 최근 자신감을 회복해가며 외국인 투자법과 금융통화정책 등을 전향적으로 손질해가는 추세다. 산업화 정도가 아직 미약한 쿠바 경제지만 그러나 두드러진 구석은 있다. 일부 산업이 보여주는 글로벌 경쟁력 때문이다. 값싸고 수준 높은 수술을 받기 위해 타국으로부터 오는 환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발달된 의학을 기초로 한 생명공학(BT) 부문 쿠바의 경쟁력은 웬만한 서방보다 낫다. 미국의 경제 봉쇄에 살아 남기 위한 유기농업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쿠바의 잠재력에 줄을 대는 국가 중 돋보이는 나라는 역시 중국이다. 국제사회에서 따돌림을 받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그의 정치 선배 카스트로에 기대려 다가서고 있지만 중국의 경우는 철저히 실속 챙기기의 의도다. 미국은 소련을 쿠바에서 추출하기 위해 30년 동안 노력했다. 그런데 지금 그 자리를 중국이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말 후진타오는 카스트로를 만나 16개의 경제협정을 무더기로 체결했다. 그 자리에서 카스트로는 ‘비바 차이나’(중국 만세)를 외쳤다. 쿠바 정책에 관한 한 미-중 사이 게임의 승자는 확연히 중국이다. 인권문제로 쿠바 정부와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EU도 중국 뒤쪽에 처지고 있다. ▦포스트 카스트로 시대는?…결국은 열릴 땅=지난 달 21일 아바나. 전례없던 일이 벌어졌다. 혁명 이후 45년 만에 첫 반체제 시위다. 200명 정도만이 참석한 소규모 시위였지만 국민들의 신망이 높은 카스트로의 절대적 지위를 감안하면 충격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포스트 카스트로의 쿠바는 전 세계가 관심을 갖는 문제다. 현재 80세의 고령인 카스트로를 이을 후계자로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국방장관이 지목됐지만 그 또한 70대 중반인데다 형과는 카리스마에서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국제사회는 카스트로 사후 쿠바 통치를 집단 지배 체제로 예상하면서도 어떤 형태로든 개방은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카스트로 개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와는 별개로 체제 변화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가 언제까지나 과거수준에서 머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쿠바 정부가 개방과 그에 따른 이데올로기적 손상의 밸런스를 어떻게 맞춰나갈 건지에 주목하고 있다. 쿠바의 미래에 바로 직결된 문제다. 기업과 자본의 접근이 용이치 않은 ‘닫힌 땅’ 쿠바. 혁명가의 사진이 여전히 도시를 도배하고 있는 나라. 그러나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그랬듯 강력한 지도자의 갑작스런 유고(有故)가 통치의 공동(空洞)화로 연결될 경우 둑은 일시에 무너질 수도 있다. 지난 세기 카리브 해 중심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로서 아바나가 누렸던 영화(榮華)는 재연될 수 있을까. 쿠바가 우리의 가시권내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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