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5년8개월에 걸친 해외 도피생활의 행적은 그 자체로 ‘미스터리’였다.
대우사태 직후인 지난 99년 10월 중국 산둥성 옌타이시의 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을 끝으로 자취를 감춘 이후 지금까지 ‘김우중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프랑스ㆍ모로코ㆍ베트남ㆍ모로코ㆍ태국ㆍ독일 등에 살고 있다는 보도나 소문, 목격담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례는 2~3차례에 그쳤을 정도다. ‘김우중이 귀국을 추진하고 있다’는 관측도 5년8개월 내내 잊을 만하면 다시 등장하곤 했다.
◇수술ㆍ요양 등 ‘고단한 유랑생활’=김 전 회장의 해외 유랑생활은 당초 ‘일시적인 도피’가 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본인 역시 잠시 해외로 나가 있은 뒤 상황(대우사태)이 일단락되면 조만간 돌아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그는 2001년 3월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의 ‘적색수배’ 명단에 오른 것을 계기로 5년이 넘는 장기간의 유랑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는 특히 출국 이후 건강이 악화되면서 수술과 요양으로 이어지는 고단한 나날을 보냈다.
해외도피 전에 이미 위암 수술과 뇌경색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김 전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심장수술을 받았으며 이후에도 장협착증 등으로 고생하면서 프랑스와 베트남ㆍ태국ㆍ수단 등을 돌면서 요양생활을 거듭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 과정에서 프랑스 니스, 베트남 하노이ㆍ호찌민, 미국 플로리다, 태국 방콕 등지에서 현지 교민에게 목격되거나 지인들과 만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특히 4월 초 베트남 호찌민시의 한 호텔에 머문 데 이어 최근 하노이에서 귀국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초미의 관심을 끌었다.
그가 이처럼 비교적 ‘자유롭게’ 각국을 넘나들 수 있었던 것은 87년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기 때문이며, 치료비와 생활비 등 도피생활에 필요한 경비는 주로 과거 사업을 하면서 쌓은 국내외 지인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왔다는 후문이다.
◇‘유랑 속 세계경영’ 재기 꿈 여전?=김 전 회장은 수술과 요양으로 이어지는 유랑생활을 하면서도 ‘재기의 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출국 이후에도 프랑스 로르사의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사업자문을 해주고 고정된 보수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에는 베트남 정부 산하 경제연구소 자문위원이라는 공식 직함을 갖고 베트남 신도시 건설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베트남 신도시 프로젝트는 대우건설과 포스코건설 등 한국업체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본격적인 사업준비에 나선 상태다. 이와 관련, 재계에서는 그가 하노이 근교에 추진되고 있는 골프장 및 콘도 사업, 하노이 대우호텔 인근의 65층짜리 비즈니스센터 건설사업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실제로 2002년 동남아시아의 한 국가에서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대우는 죽었어도 대우의 정신은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2003년 1월에는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천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대우사태 이후 DJ정부가 잠시 출국해 있으라고 권유했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비행기가 곧 집무실’이란 별칭까지 탄생시키면서 각국을 누비며 펼쳤던 ‘세계경영’의 꿈이 아직도 그의 심장과 뇌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