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리빙 앤 조이] 知天命,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50 잔치는 이제 시작이다

강용아 파출소장 강의모습

플랜코리아를 통해 베트남 아동들을 후원하고 있는 유영수 씨

색소폰을 연습을 하고 있는 최용호 삼성전자 구미지원센터 부장

홍합이야기 김해내외점의 배이목 사장

환자에게 체면 심리 치료를 하고 있는 이차연 누리보듬 연구소 소장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는 고은 시인

『지난 2000년 IMF 외환위기의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을 당시 쌍용중공업 주식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휴지 조각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오늘날 '샐러리맨의 신화'가 된 강덕수 STX 회장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그는 미래의 가능성을 보았다. 강 회장은 사재 20억원을 털어 쌍용중공업을 인수했고 그의 가족들은 살던 집을 떠나 전셋집으로 옮겨야 했다. 당시 그의 나이 50이었다. 강 회장의 성공담은 인생을 정리하는 시기로 인식하는 50이라는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한 일화로 유명하다. 비단 강 회장 뿐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정리할 것 같은 나이 50에 도전을 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했다. 그래서 빅토르 위고는 40~50대는 '나이가 들어서 맞이하는 청춘과 같은 것'이라며 50대를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제2의 질풍노도 시기'라고 주장했던 것이 아닐까. 쉰 살이라는 나이는 원숙한 아름다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영화로도 제작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는 나이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는 기이한 운명을 지닌 벤자민 버튼은 쉰 살의 외모를 지닌 스무 살 때 힐더가드라는 여인을 만나 그녀에게 구애를 망설인다. 그러나 그녀가 먼저 손을 내민다. "선생님 나이는 낭만적이에요. 쉰 살! 스물 다섯은 너무 세속적이에요. 서른은 일하느라 바빠서 피폐해지기 십상이고 마흔은 시가 한대를 다 피울 때까지 끝도 없이 이야기를 하는 나이죠. 예순은… 아, 예순은 일흔에 너무 가까워요. 하지만 쉰 살은 원숙해요. 전 쉰이 좋아요." 하지만 정작 원숙함의 상징인 '50'이라는 나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20대는 시간이 시속 20㎞로 달리고 30대는 시속 30㎞, 50대는 시속 50㎞로 달린다는 표현처럼 남은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에 오히려 발을 동동 구르지나 않을까. 이런 성급함을 나무라듯 동양에서는 50이라는 나이를 '지천명'의 시기로 보고 있다. 공자는 만년에 논어 '위정편'에서 "나는 나이 열 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고 했다.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안다는 지천명은 50세가 성인(聖人)의 경지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SKK GSB) 유필화 부학장은 "현대인들이 50세 이후에도 30년 이상 더 산다는 점을 감안하면 50세는 인생 후반기를 새롭게 시작하는 전환기로 봐야 한다"며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50대에 퇴직하기 때문에 인생에서 50대는 '제2의 경력'이 시작되는 성스러운 단계이며 전반기 인생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깊은 반성을 통해 더 나은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 첫 발을 내딛는 시기"라고 규정했다. 경인년 새해 서울경제신문 창간 50돌을 맞아 50이라는 범상치 않는 연륜과 맞닥뜨린 사람들을 찾아봤다. 결코 짧지 않은 50년의 시간을 치열하게 살아온 그들은 이제 '성공 지수'보다 '행복 지수'를 높이는데 힘을 집중하면서 가지 못했던 길에 대한 '도전', 나보다 어려운 이들을 돌아보는 '봉사' 등을 통해 윤택한 인생을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 '50세, 빛나는 삶을 살다'(에코의 서재 펴냄)를 쓴 에릭 뒤랑은 54세에 첫 저서를 내고 이렇게 말한다. "청춘을 끝내는 것은 항상 감당하기 힘든 애와도 같은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젊음이 가고 난 후에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핵심은 지금 이 순간을 건실하게 사는 거죠. 뒤돌아보지 않고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사는 거예요. 나이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려야 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나이 50을 인생을 정리하는 시기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50세가 여전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삶의 과정이지 시들어가는 인생의 내리막길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50대 이후부터는 보다 성숙해진 영혼으로 자신의 삶에 도전과 봉사라는 특별한 선물을 안길 수 있다는 것. 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도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삼성경제연구소 펴냄)는 책을 통해 "인간 수명이 길어져 이제는 50세 전후에 은퇴를 한다면 인생의 절반을 산 셈일 뿐"이라며 "우리네 인생을 번식기 50년과 번식후기 50년으로 구분해 인식하고 철저하게 준비하라"고 제안했다. 대령 예편 심리치료사 도전
대학 진학… 악기 배우기도
봉사활동 위해 창업도 불사
기업 50년은 장수 주춧돌
■50에 새 인생을 열다 나이 쉰을 넘어 불꽃 같은 삶을 살며 눈부신 성공을 이뤄낸 사례는 하나 둘이 아니다. 알프레도 히치콕은 61세에 영화 '싸이코'를 찍었고 코코 샤넬은 71세에 세계 패션계를 다시 평정했다. 넬슨 만델라는 72세에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스트라디바리는 83세에 전설의 바이올린 '스트라디 바리우스'를 제작했다. 근대 천문학의 토대를 마련하고 인류 과학사의 근간을 뒤흔든 저서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는 코페르니쿠스가 50대에 집필을 시작해 67세에 발표했다.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서도 50이라는 나이에 인생의 전성기를 맞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경북 경산시 압량면사무소에서 청소ㆍ환경ㆍ장애인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이인훈(50) 서기보는 지난해 9월부터 9급 공무원으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일간지 편집기자로 일하던 이 씨는 30대 초반 사법 고시를 준비하다 여의치 않자 40세부터 '먹고 살기 위해' 학원 강사로 일했다. 43살 늦은 나이에 결혼하고 애까지 생기면서 가장으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꾸려야겠다고 생각한 그가 선택한 것은 9급 공무원 시험. 2009년부터 공무원 응시연령 상한 제한이 폐지된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시험 공부에 매진해 지난해 7월말 경북도 9급 지방공무원임용 공채시험에 합격했다. 올해 지천명의 나이를 맞은 이 씨는 "주변의 내 또래들은 벌써 직장을 그만두기도 하는 나이에 새롭게 시작한 것은 분명 뜻 깊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해군 대령으로 예편하고 새롭게 사업을 시작한 이차연(50) 씨도 쉰 살을 맞는 소감이 특별하다. 군대에서 사회로 첫 발을 내딛은 지난 2008년 그 동안 관심을 뒀던 심리 치료 분야를 사업화할 생각으로 역삼동에 누리보듬심리상담연구소를 차렸고 올해는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는 시기이기 때문. 취업컨설팅업체인 스카우트로부터 국방부 전직 컨설팅을 받으며 차근차근 취업 준비를 해 왔다는 이 소장은 "방위산업체로부터 스카우트 요청이 있어 고민했지만 결국 적성에 맞는 심리 상담을 선택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변화를 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여년 동안 전업 주부로 지내다 어엿한 사장으로 변신한 박은숙(50) 씨. 그는 지난 2008년 5월 남편이 하던 인쇄 사업이 고유가로 인해 어려움을 겪자 자신이 직접 사업에 나서기로 했다. 여러 창업 아이템을 살펴보던 박 씨는 대중적인 서민 먹거리인 치킨이 경기에 덜 민감한 아이템이라고 판단, 서울 강동구 천호역 인근에 사바사바치킨호프를 열었다. 박 사장은 "살림만 하다가 창업을 해 아직까지 완전히 적응되진 않았지만 내 힘으로 뭔가를 이뤄냈다는 성취감은 그 동안 맛보지 못한 특별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이상헌 한국창업경영연구소 소장은 "최근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50대 전후의 시니어 창업이 늘고 있는데 나이 50에 뭔가를 시작하기에 늦었다는 생각을 과감하게 버리고 적극적인 자세로 창업에 임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50에 배움을 통해 거듭나다 지천명의 나이에 뒤늦은 배움의 길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행복을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올해 50세를 맞는 보험설계사 성진숙 씨는 지난 2008년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실버요양산업학과에 입학해 공부에 맺힌 한을 풀었다. 그 동안 많이 배우지 못했던 성 씨는 늘 공부에 대한 열망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차일피일 꿈을 미뤄왔다. 하지만 50세가 되기 전에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고 용기를 내 대학교에 입학했다. 성 씨는 "50대가 됐다고 주저앉기보단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다 보면 사회에 기여할 기회가 올 것"이라며 "졸업 후 노인들을 위한 요양병원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대학 한국언어문화학과에 입학한 초등학교 교사 황인천(50) 씨도 올해 의미가 남다르다. 그가 뒤늦게 대학교에 다시 입학하게 된 것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 때문. 황 씨는 "다들 50세가 되면 은퇴나 노후걱정에만 매달리는데 미래에 대한 막연한 염려보다는 현재를 충실히 산다면 그 안에서 즐거움과 행복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50세에 배움의 길로 접어든 덕분에 행복한 50대를 살아가는 이들도 여럿 있다. 올해로 30년째 경찰공무원으로 일하는 강용아(55) 신당파출소장은 50세가 되던 해인 지난 2005년 한국사이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강 소장은 "적극적인 자기계발 노력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전환점이 50세"라고 강조했다. 강 소장은 대학 졸업 후 고려대 대학원을 마치고 현재 동국대학교에서 형사수사법 전공의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한국사이버대 외래교수직까지 겸임하고 있다. 지난 2008년 한국디지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김유택(54) 삼성물산 건설부문 상무도 50세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은 경우.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던 김 상무는 업무에 필요한 법학을 체계적으로 배우고자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것. 사내에서 노무 관리 전문가로 통했던 그는 적극적인 자기계발 노력 덕분에 지난해 5월 노동부의 산재심사위원에 위촉된 데 이어 7월에는 석탄산업훈장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만약 50이라는 나이 때문에 망설이다가 뒤늦은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지금의 행복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은 인생을 더욱 의미 있게 KBS '생방송 심야토론'의 진행자였던 방송인 정관용 씨는 인간의 삶은 '30-20-40(서른 살까지 배우고 쉰 살까지 일하다가 아흔 살쯤 죽는 인생)'이라며 "이제는 인생 이모작 시대가 아니라 삼모작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며 "진정한 인생 삼모작을 위해선 '성공 신화'가 아니라 '행복 신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인생 삼모작을 시작하면서 봉사를 통해 행복 신화를 만들어가는 쉰 살 멋쟁이들도 있다. 삼성전자 구미지원센터 인사그룹에서 일하는 최용호(50) 부장은 4년여 전부터 색소폰에 빠져 살고 있다. 특히 지난해엔 음악을 좋아하는 동년배들끼리 뭉쳐 색소폰과 드럼 5인조인 'SD앙상블'을 결성, 요양원이나 다문화 가정 행사 등에 음악 봉사를 해오고 있다. 최 부장은 은퇴 후에 음악 봉사를 하면서 인생을 살고 싶다. 그는 "쉰 살을 맞아 더 수준 높은 음악 실력을 갖추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대전에서 열쇠 가게를 운영하는 유영수(50) 씨는 플랜코리아를 통해 베트남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어린 시절 양친회(플랜코리아의 전신)를 통해 도움받았던 것을 가슴 깊이 기억하고 있는 유 씨는 언젠가 자신도 타인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해 10여년 전부터 실천해 오고 있다. 그는 "50대 대부분이 한국전쟁 이후 국제구호단체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 동안 받았던 도움을 우리보다 힘든 처지의 사람들에게 쏟고 싶은 마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씨는 양친회를 통해 자신을 후원해준 미국인 윌리암 테일러 씨를 만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소망도 갖고 있다. 지난 해 11월 경남 김해 지역에 퓨전포차 '홍합이야기'를 개업한 배이목(50) 사장의 창업 동기는 특별하다. 20년 이상 태권도장을 운영하던 배 사장은 장애인 학교에서 봉사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태권도장을 정리하고 특수 체육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학교에서 특수 체육을 전담하는 한편 방과후 수업을 위해 작은 체육관을 임대해 아이들의 신체 활동을 돕고 있다. 그러나 봉사 활동에 전념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기자 창업에 나서게 된 것이다. 50세를 맞아 어려운 길을 택한 배 사장은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봉사로 인생의 방향을 바꾼 것은 무척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등단 50주년, 더욱 원숙해진 문인들 현실 참여적인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온 고은(77) 시인은 지난 60년 첫 시집 '피안감성'을 낸 후 만 50년 동안 수많은 시를 써왔다. 20세에 입산해 승려가 됐다가 조지훈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역사의 굴곡을 헤치고 시인으로 우뚝서기까지 고은의 시에 대한 열망은 한결같다. 그의 시 세계에 대해 시인이며 소설가인 김형수 씨는 "전대미문의 돌발사태이자, 현재진행형 사춘기"라고 표현하며 고은의 대표시 66편을 묶은 '오십년의 사춘기'(문학동네 펴냄)를 출간하기도 했다. 등단 50년을 맞은 고은에게 시란 뭘까. 우문일 수 있는 이 질문에 고은은 "시는 그 무엇이라고 정의 내릴 필요도 없는, 그냥 시일 뿐"이라고 답했다. 경복고 재학 중 청소년 잡지 '학원'의 문학상에 단편소설 '팔자령'이 당선되면서 올해로 문학인생 만 50년을 맞는 황석영(67) 작가. '삼포 가는 길', '장길산', '무기의 그늘', '오래된 정원' 등 한국 문단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발표했던 그는 지난 89년 방북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7년 동안 복역하고 지난 98년 석방됐다.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 그는 2008년 인터넷에 '개밥바라기별'을 연재해 누적 방문자 200만 명을 돌파하며 인터넷 연재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했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황석영은 최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문학 50년의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똥 누러 갔다 왔더니 인생이 가버렸습니다. 이제 글을 쓸 때 딱히 취재를 하지 않고 쓸 정도가 됐습니다. 어떤 일을 50년 했다고 하면 그건 정말 달인 아닙니까. 예전엔 황석영 하면 조국과 민족, 심지어는 빨갱이라고 했는데 이젠 동네 아저씨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지난 60년 10월 최인훈(74)이 우리 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광장'을 발표한 지도 올해로 만 50년이다. 4ㆍ19 혁명 이후 사회 변화에 힘입어 탄생한 이 작품은 당시 금기시됐던 남북 대립을 정면으로 파헤친데다 분단 상황에서 처음으로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루었다는 문학사적 의의를 남겼다. 최 작가는 50주년에 즈음해 소설가로서 뿐 아니라 극작가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 해 연극 무대에 올려져 호평을 받은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를 비롯,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를 소재로 한 '둥둥 낙랑둥' 등 우리 옛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50년이란 시간은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시간인데 반세기 동안 독자와 관객의 언저리에 남아있었던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한국기업 50년은 장수 기업의 주춧돌 일본엔 100년 이상 된 기업이 무려 5만개가 넘는다. 가장 오래된 곳은 오사카에 본사를 둔 토목건축회사 '곤고구미(剛組)'로 1,432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현존 기업 가운데 세계 '최고령'이다. 독일에도 2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이 800여개이며 이중 세계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는 곳도 500여개나 된다. 이에 비해 기업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창립 100년을 넘긴 기업이 두산, 동화약품공업, 신한은행 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며 창업 50년이 된 기업도 그리 많지 않다. 한국신용평가정보의 분석에 따르면 서울경제신문이 창간된 1960년 이전에 설립돼 50년 이상 된 상장 기업은 163개로, 상장사(유가증권 및 코스닥 포함) 1,803개 가운데 9%에 불과하다. 상장 기업 10개 중 1개 정도만 50년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니 한국 기업사에서 50년은 의미 있는 숫자인 셈이다. 특히 올해로 만 50돌을 맞는 기업은 신풍제지, 대유디엠씨, 동양물산기업, 유성기업, 한국쉘석유, 신도리코, 부광약품, 혜인, 세아제강, 슈넬생명과학, 코오롱건설 등 11개사다. 수백년, 심지어 천년이 넘은 세계 장수 기업들과 비교하면 우리의 50년 기업 역사가 일천하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국내 기업 환경이나 시장 상황은 상전벽해 수준이다. 신도리코가 창업할 당시 수입산 복사기 한 대 값은 집 한 채와 맞먹을 정도로 비싸 창업주인 우상기 회장이 직접 생산에 나섰으며 창업 4년만에 최초의 국내산 복사기를 생산하게 됐다. 세아제강은 국내 최초의 강관 업체로 출발해 현재 일반 배관용 이외에 유정용, 송유용 강관, 스테인리스 강관, 첨단 소재의 티타늄 튜브까지 생산한다. 한국에서 창업 50년을 지나 장수 기업 반열에 오른 기업들의 특징과 비결은 뭘까. 서울대 경영대 장수기업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는 조동성 교수는 "기업이 장수를 달성하기 위해 외부 환경에 대응하고 자원을 활용하는 방식이 바로 '장수 메커니즘'이며 이 메커니즘은 창조-적응(체계화)-혁신의 단계를 거쳐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대 교수는 시장 부침이 적은 산업군에서 고객의 신뢰를 얻어 시대 변화를 발 빠르게 감지하고 적응한 기업들이 한국 경제에서 장수 기업으로 살아 남는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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