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북극해 유전


지난 8월 영국 사우스뱅크의 로열더치셸 본사 앞. 턱시도 양복과 드레스를 차려입은 사람들이 등에 악기를 멘 채 하나둘씩 나타나더니 '북극 빙하를 위한 레퀴엠' 연주를 시작했다. 환경단체인 그린피스가 북극에서 유전 탐사를 추진하는 쉘에 중단 요청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마련한 연주회다.

많은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국적 석유기업은 물론 북극해 인근 국가들이 북극해를 들쑤시는 것은 이곳에 매장된 풍부한 자원 때문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200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북극해에는 원유만 해도 세계 추정 매장량의 13%에 달하는 900억배럴이 매장돼 있다. 북극해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것은 2003년 이라크전쟁 이후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부터다. 2008년 유가가 배럴당 135달러로 정점을 치자 북극해 유전 탐사의 경제성이 훌쩍 올라갔다. 북극해는 수심이 깊어 유전 탐사 비용이 심해저 탐사 비용과 맞먹는다. 유전 탐사를 계속하려면 유가가 최소한 70달러 이상 유지돼야 한다.

유가가 뚝 떨어진 요즘은 당연히 북극해에 대한 열정이 식은 상태다. 그래서일까. 쉘은 지난달 28일 북극해에서 충분한 원유를 찾지 못했다며 탐사를 그만둔다고 밝혔다. 쉘의 발표가 극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탐사 중단 결정까지 9년간 70억달러가 들어갔기 때문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지난 5월 24년 만에 처음으로 북극해 유전 개발을 최종 승인한 미국 정부를 바보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바보로 남아 있기가 싫어서인지 미국 정부도 17일 애초 허용하기로 한 북극해 유전 탐사 계획을 백지화했다.

북극해 유전 탐사는 유가와 상관없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원유 유출 사고가 날 경우 현재 기술로는 지구적인 피해를 피할 수 없다. 당장 빙하가 많은 바다에서는 기름을 제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빙하가 없더라도 극심한 추위는 기름 제거를 어렵게 한다. 유가나 인간의 탐욕이나 둘 중 하나는 빙하 아래에 묻혀 있는 게 좋겠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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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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