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주도권 싸움으로 극심한 정세불안에 시달리는 중동지역을 또 하나의 악재가 덮쳤다. 12일(현지시간) 이란과 이라크 국경지대를 규모 7.3의 강진이 뒤흔들면서 사망자가 최소 350명을 넘어섰다. 부상자도 7,000여명을 넘어선 가운데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진행되면서 사상자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날 지진은 터키와 이스라엘 등 인근 중동국가 전체를 흔들 만큼 강력해 여진의 여파도 우려된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이날 오후9시18분께 이라크 동부 술라이마니야주 할아브자로부터 32㎞ 떨어진 지점에서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했다. 3시간 뒤에는 이란 케르만샤주에서 규모 4.5의 여진이 이어졌다.
이란 국영방송은 이번 지진으로 이란 내에서 최소 348명이 숨지고 6,600여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이재민은 수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쿠르드자치구에서도 최소 7명이 사망하고 535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르드자치정부는 술라이마니야주의 피해 파악과 복구를 위해 이 지역에 하루 임시휴일을 선포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곧바로 지진 피해자들에 대한 필수품 제공을 지시했으며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사)는 피해지역 수색 및 구조작업에 돌입했다. 터키 적십자에서도 구조대를 급파해 3,000개의 천막과 1만개의 담요를 지원했다.
현지 언론들은 13일 날이 밝으면서 구조작업에 속도가 붙으면 사상자 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이란과 이라크의 여러 도시에서는 전기가 끊겼으며 여진에 대한 두려움으로 추운 날씨에도 수천명이 거리와 공원으로 몰려들었다. 할아브자에 사는 한 남성은 일본 NHK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진에 놀라 집 밖으로 뛰쳐나온 사람들이 거리에 넘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지진으로 도로가 차단된 외딴 지역에서의 피해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압돌레자 라흐마니 파즐리 이란 내무장관은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밤에는 헬리콥터가 피해 지역으로 날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농촌의 흙집은 지진에 쉽게 무너질 수 있어 아직 구조의 손길이 닿지 않은 외진 지역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여진의 피해도 작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란 지진학센터가 이번 강진의 여파로 약 50회의 여진이 예상된다고 밝힌 가운데 이란 적신월사는 7만명 이상을 수용할 긴급 대피소가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지진은 진앙에서 600㎞ 정도 떨어진 테헤란·이스파한 등 이란 북서부·중부 지역과 200㎞ 거리의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도 진동을 느낄 만큼 강진이었다. 바그다드에서 측정된 지진의 규모는 2.5였다고 이라크 언론들이 전했다. 지진이 감지된 곳은 이란과 이라크뿐이 아니다. 현지 언론들은 쿠웨이트·시리아·터키·이스라엘·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대부분의 지역에서 지진이 측정됐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아라비아 지각판과 유라시아 지각판 등이 맞물리는 곳에 있어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이다. 지난 1990년에는 이란 북서부 카스피해 연안에서 규모 7.7의 강진으로 4만명이 사망했고 2003년에는 이란 남부 밤 지역에서 규모 6.6의 지진이 발생해 약 3만명이 사망하는 인명피해를 입었다. 2012년에도 이란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에서 발생한 규모 7의 강진으로 3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