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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꿈꾸는 도시]'조립PC의 메카’ 용산...성장세 꺾이자 개발 소외지역으로

<상> 생산이 사라진 도심, 빛을 잃다

용산전자상가는 한때 국내 전자제품 유통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으나 쇠락해 용산 일대 개발사업에서 소외돼 있다. 22일 오전, 월요일임에도 용산전자상가의 다수 상점이 문을 열지 않아 썰렁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송은석기자용산전자상가는 한때 국내 전자제품 유통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으나 쇠락해 용산 일대 개발사업에서 소외돼 있다. 22일 오전, 월요일임에도 용산전자상가의 다수 상점이 문을 열지 않아 썰렁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송은석기자





원효상가 수억대 권리금은 옛말

인터넷 등에 밀려 빈상가 수두룩

금속가공사 밀집 문래동 일대도

거래기업 해외 이전으로 일감 뚝

도시재생·스타트업 연계 등 통해

주력산업 되살리려는 움직임도


화려한 ‘빌딩 숲’ 이면의 노후 저층 건물 밀집 지역은 서울을 포함해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안고 있는 고민거리다. 도심 속 쇠락한 공간은 도시의 경쟁력 저하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생산과 고용 창출 기능을 담당했던 도심 제조업의 쇠퇴로 꼽힌다. 오늘날 많은 국가에서 도심 제조업은 생산 비용 증가, 기술 혁신, 산업 구조 변화 등 다양한 원인이 결합돼 경쟁력을 잃으면서 쇠퇴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자동차산업이 쇠퇴한 미국의 디트로이트가 대표적 사례로 꼽히며 서울의 용산·영등포 등 주요 도심에서도 제조업이 쇠퇴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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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서울의 총 사업체 수 82만156개 중 제조업체 수는 6만1,140개(7.5%)로 조사됐다. 제조업체의 비중은 전국과 주변 지역인 경기도·인천시보다 낮다. 외환위기를 맞았던 지난 1998년 기준 서울의 총 사업체 수 66만3,293개 중 6만6,197개(10%)였던 제조업체 수보다도 더 줄어든 것이다.

용산·영등포는 편리한 교통 여건을 바탕으로 제조업이 발달해 산업화 시대 서울의 성장을 이끈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용산에서는 1980년대 청과시장이 있던 자리에 조성된 용산전자상가가 1990년대까지 조립 컴퓨터를 중심으로 국내 대표 전자·전기부품 전문 생산·유통 중심지로 전성기를 누렸다. 2000년대 이후에는 테크노마트·하이마트 등 다른 전문 상가들이 생겨 수요가 분산됐고 인터넷 구매 확대로 성장세가 꺾여 용산전자상가는 용산 일대 개발에서 소외된 지역으로 남았다.

전성기에는 입지 좋은 상점의 권리금이 최대 3억~4억원에 달했고 세입자가 다른 세입자에게 더 높은 임대료를 받고 임대하는 ‘전전대’도 성행했다고 한다. 상점을 임차하려는 수요가 많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권리금이 전혀 없고 오히려 곳곳에서 비어 있는 상점을 찾기도 어렵지 않다. 원효상가에서 만난 한 상인은 “예전에는 주말에도 나와서 작업을 했지만 지금은 전기료·인건비라도 아껴야 하니 그럴 일이 없다”면서 “입지 조건이 떨어지는 상점에서는 하루 종일 마우스 하나 못 팔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전자상가의 정체성도 흐려지고 있다. 장병군 용산전자상가연합상인회 회장은 “예전에는 상가의 구역마다 전기부품·컴퓨터·가전제품, 이런 식으로 판매 제품 종류가 정해져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구분이 없다”고 설명했다.

영등포에서는 영등포타임스퀘어·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등 대형 쇼핑몰들이 있는 영등포역 주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낡은 1층 건물들로 이뤄진 쪽방촌·기계금속가공업체들이 철길을 따라 밀집해 있다. 1960년대부터 문래동 일대에 조성돼 현재 1,300여개가 남아 있는 기계금속가공업체들은 1980년대 최대 호황을 맞았다가 이후 쇠퇴해왔다. 각종 금속 제품을 가공해 공급하는 이 지역 업체들은 거래처인 기업들의 해외 이전, 조선업·중공업의 쇠퇴 등으로 일감 및 이익이 줄어드는 추세다. 업체 대부분은 1~2인이 운영하는 소규모이며 종사자의 평균 연령대는 50대로 추산된다. 1994년부터 금속가공업체 한빛테크랩을 운영하고 있는 이승준 대표는 “1990년대에는 한 달~두 달분 일감을 미리 받아뒀고 직원 3명과 함께 일했지만 지금은 혼자서 일한다”며 “하루 이틀 앞을 보기 어려워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작업한다”고 전했다.

빼곡히 들어서 있는 업체들 사이 곳곳에는 레스토랑·카페들도 자리 잡고 있다. 매출 감소로 폐업한 곳을 사들여 리모델링한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렴한 시세로 매입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인기를 끌었으나 시세가 오르다 보니 매물을 찾기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인근 대성부동산의 이웅묵 대표는 “대로변 상점 시세는 2년 전쯤에는 평(3.3㎡)당 2,000만원 초반대였지만 지금은 3,500만원대”라며 “매물이 나오면 사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있지만 시세가 계속 오르니 업주들이 이사비용이라도 잘 챙기려고 장사가 안 돼도 상점을 팔지 않고 붙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낙후된 도심 지역에서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쇠퇴한 기존 주력 산업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용산에서는 서울시가 용산전자상가를 창업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도시재생사업에 착수했고 상가 부흥을 원하는 상인들이 연합상인회를 중심으로 함께 참여하고 있다. 영등포에서는 2013년 문을 연 문래소공인특화지원센터(이하 센터)가 소공인 대상 교육 과정 운영, 대학생·스타트업과 지역 소공인 연결 등의 활동을 진행 중이다. 이승준 대표처럼 교육 과정을 이수한 사람들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학생·스타트업의 주문을 받아 창업에 필요한 시제품을 제작하는 등 고객·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센터는 이 같은 활동을 통해 문래동을 기계금속가공 분야 시제품 제작의 중심지로 발전시킨다는 목표다. 서울시는 영등포 일대에 대해서도 소공인들을 중심으로 지역을 발전시킬 경제기반형 도시재생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박경훈기자 socool@sedaily.com

박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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