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60년대 얼굴' 산업단지, 재개발로 성장기반 돼야

유원형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영자문단 위원장

1964년 이래 성장 이끈 산단

여전히 지역경제 기여도 큰데

청년들 기피에 생명력 꺼져가

문화·산업 조화 새모델 찾아야

유원형 전경련경영자문단 위원장


군포 당정산업단지에서 산업용 밸브를 제조하는 중소기업에 4년째 자문을 다니고 있다. 이 업체에 수없이 가봤지만 아직도 갈 때마다 길이 아리송해 헤매고는 한다. 많은 제조업체들이 밀집돼 있기도 하지만 왕복차량이 드나들지 못할 정도의 좁은 도로가 제멋대로 나 있는 것도 한몫한다. 좀 더 정비됐다고 하지만 근처에 있는 반월시화 단지에 위치한 자문기업을 찾아가는 것도 겁이 나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2016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1,158개 산업단지에는 9만여개 중소기업, 약 200만명이 일하고 있다. 국내 중소제조업체가 13만여개 정도이므로 중소 제조업체 10개사 중 7개사가 산업단지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설 노후화, 열악한 주변 환경으로 청년들이 이들 산업단지 내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1964년 이래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견인해온 1세대 산업단지가 인재 영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생명력을 잃어가는 것이다.


정부·학계·언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들이 우수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현 정부도 중소기업청(廳)을 부(部)로 격상시키고 ‘청년 추가고용 지원제도’ 등의 정책으로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조금 나은 대우를 해준다고 해서 젊은이들이 이곳에 올까? 아니 나부터 이곳에 취업하려 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산업단지 내 중소기업들은 두둑한 보수도 따뜻한 환대도 제공할 여력이 없다.

중소기업들이 자생력을 갖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술력이 중요하다. 기술력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젊고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지 못한 기업은 기술혁신이 어렵고 이를 통한 경쟁력 확보도 쉽지 않다. 그러나 생활공간이 돼가는 공단의 근무환경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유능한 청년들을 유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선진국에서 쾌적한 분위기로 산업단지를 바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사회에도 도움을 주는 사례가 많다.


유럽 최대의 공업지역이었던 독일 북부의 루르 지역은 석탄·철강산업의 구조적 쇠퇴로 급격한 침체를 겪었으나 주정부 등 공공의 주도하에 도시재생과 산업구조 재편 등을 통해 첨단산업과 녹색환경이 살아 있는 친환경적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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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60년대 전기·철강·특수금속 분야 대기업과 이들의 하청 중소기업 중심으로 성장한 일본의 오타구는 도시·주택정비공단과 지방자치단체가 합심해 ‘고도 기술 산업과 생활이 공존하는 도시 만들기’를 기본방향으로 설정하고 주(主)·상(商)·공(工)이 조화를 이루는 환경을 조성하기도 했다.

우리도 유능한 인재들이 스스로 찾아올 수 있도록 문화와 산업이 조화롭게 구비된 품격 있는 산업단지를 만들어가야 한다. 문화시설과 생활 인프라를 구축하고 친환경 공간설계로 산업단지를 재개발한다면 사람과 기업이 모이는 새로운 성장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충북 음성군은 16개의 농공단지와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우량기업을 유치해 1,900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 농가소득 향상, 교통·물류의 중심지 부상 등 다양한 경제적 성과를 이뤄냈다. 세종시에는 오는 2020년까지 2개의 산업단지가 새로 조성돼 단지 인근 전의면 읍내리에는 19년 만에 처음으로 1,700여가구의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 최근 사례만 살펴봐도 산업단지가 지역 경제에 가져다주는 효과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청년들에게 안 간다고 타박만 할 게 아니라 찾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3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며 한국 경제의 고성장을 이끌었던 1세대(1960~1980년대 조성) 산업단지를 재개발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유원형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영자문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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