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종목·투자전략

비상장사는 상속세 130% 할증...락앤락 등 아예 회사 팔고 다른 사업

■상속세 얼마나 부담되길래

세금이 상속가치보다 많아 기업 승계 엄두 못내

PE 등에 지분 팔아 세금 부담 줄이는 사례도

가업승계 인식 바꾸고 日처럼 파격적 지원 나서야



# 1970년대 개발 바람이 한창이던 시절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건설사를 설립했다. A는 건설업에 능했고 B는 돈 관리를 잘했다. 시작할 때 두 사람의 지분은 5대5로 같았다. 직책상 위아래도 없었다. 그러나 A가 갑자기 사망하며 상황은 달라졌다. 국세청은 유족이 지분을 상속받으려면 총 900억원의 상속세 중 300억원을 6개월 안에 내라고 통보했다. 현금이 없는 A의 유족들은 지분 일부를 팔아 세금을 내려 했지만 비상장 건설업체 지분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 결국 상속 지분가치보다 세금이 더 많아지자 유족은 지분을 전부 외부 투자자에게 매각했다. 몇 년 후 이재에 밝아 내부 공사 일감 몰아주기로 현금을 모은 B는 A의 지분을 되사들여 100% 경영권을 확보했다.

최근 중견기업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Y건설 스토리다. 상속세율 자체가 50%로 높은데다 일부 업종은 국세청이 시장 가격보다 지분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현금이 없는 창업주나 2·3세는 능력과 상관없이 상속을 포기한다. 먹에서 붓펜을 개발하고 다시 탄소봉 기술개발로 이어진 일본의 100년 기업 구레다케는 꿈꾸기 어려운 게 한국의 중소기업이다.

2~3세 세대교체에 접어든 중소·중견기업은 고령화에 따른 창업주의 은퇴로 단명하고 있다. 중소기업 중앙회의 2016 가업상속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기업의 61%가 상속세를 가업승계의 최대 걸림돌로 뽑았다. 특히 매출 100억원 이상의 기업에서 이 같은 대답이 높았다. 될 성싶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커가지 못하니 양극화가 커지고 오너의 사망으로 기업이 팔리면 가장 큰 피해는 근로자가 입는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검증된 2세 경영인이 가업을 승계한다면 장기적 시각에서 투자를 집행하는 오너 경영의 장점을 살릴 수 있다”면서 “최근 상속증여세 과세 강화로 아예 기업 수명을 단축 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밀폐용기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던 김준일 락앤락(115390) 회장은 지난해 말 지분 52.79%를 홍콩계 사모투자펀드(PEF)인 어피니티에 넘겼다. 기존 사업을 자녀들에게 넘기고 다른 사업을 하려 했지만 상속세 부담에 아예 회사를 팔아버렸다. 회사를 판 김 회장은 홀가분하게 베트남에서 투자를 구상하고 있다. 중견 가구업체 까사미아도 가업승계 대신 대기업인 신세계로 회사를 매각했다.

관련기사



비현실적인 기업가치 평가는 기업을 매물로 내놓게 한다. 국세청이 판단하는 기업가치가 시장가치보다 높을 경우 Y건설처럼 비상장 기업은 지분을 매각할 수밖에 없다. 대주주가 30억원 이상의 지분을 상속하면 상속세율이 50%이고 비상장사는 평균 130% 할증되어 65%의 세금을 내야 한다. 이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기업공개(IPO)를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상장한 대원은 오너 일가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만 3,000억원에 당기순이익이 300억원으로 상장으로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없었다. 상장 과정에서 흥행에 실패했고 상장 이후 주가 흐름도 부진하다. 그러나 당시 창업주가 2세에 지분을 넘기는 과정에서 비상장 건설사에 할증되는 상속증여세를 피하려고 상장을 진행했다.

상속부담에 기업 매각이 늘어나며 자산운용사나 프라이빗에쿼티(PE)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경영권은 유지하고 싶지만 세금 부담이 큰 기업들은 PE 등에 지분을 팔아 세금을 덜어낸다. 2~3대 주주로 경영에 참여하는 PE는 일정 기간이 지난 후 1대 주주에 지분을 되팔아 차익을 남긴다.

대기업도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세금 혜택이 사라지며 전전긍긍이다. 지주회사 전환의 이득인 ‘자회사 현물출자 양도세 납세 이연’이 올해 말로 일몰이 종료하기 때문이다. 대주주들은 기존 회사를 두 개 이상으로 쪼개 지주사와 자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흔히 자회사의 주식을 지주사 지배권 강화에 쓸 목적으로 지주사에 현물출자(맞교환)하게 된다. 과세특례 조항이 없다면 대주주들은 최초 주식 취득 시점에서 맞교환할 때까지 주식가치 증가분에 대한 세금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과세이연 혜택으로 세금을 미뤘다가 나중에 주식을 매각 또는 상속 및 증여할 때 내면 된다. 수십년 간 납세를 미루면서 다른 투자에 쓸 수 있으니 기업 입장에서 큰 혜택이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1~2015년 약 8,000억원의 세금이 이런 식으로 유예됐다. 지난 20년간 일몰이 연장된 납세이연은 오너 일가가 지분을 뻥튀기한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문재인 정부 들어 연장이 어려울 것이라는 게 기업들의 우려다. 올해 인수합병(M&A) 시장은 세금 부담에 못 견뎌 나오는 매물이 눈에 띄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임세원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 태그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