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앞두고 2기 지도부 인선에 돌입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상8하(67세면 유임, 68세면 은퇴)’, 공청단 견제 등 암묵적 인사원칙들까지 뒤집으며 ‘미국통’을 중용하고 있다. 집권 2년차를 맞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저녁(현지시간, 한국시각 31일 오전11시)에 발표하는 첫 연두교서가 미중 경제전쟁 시작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 시 주석이 대미관계 ‘해결사’를 전면에 내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2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최고지도부에서 은퇴했던 시 주석의 오른팔 왕치산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의 국가부주석 취임이 유력해졌다. 이날 후난성 13기 인민대표회의에서 왕 전 서기가 전인대 대표로 선출되면서 3월 전인대에서 지도부에 복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공산당의 불문율인 7상8하 원칙에 따라 기율위 서기와 상무위원직에서 물러났다.
원칙을 깨뜨린다는 부담감에도 시 주석이 그를 다시 중용하려는 것은 위험수위에 다다른 미중관계의 실타래를 풀 ‘소방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WSJ는 분석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 발표하는 연두교서에서 무역 불균형, 지적재산권 침해 문제 등을 거론하며 ‘중국 때리기’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11월 중간선거 때까지 지지층을 결집하고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통상·안보 등 전 분야에서 중국을 압박해나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 친분을 쌓아왔으며 2009년 시작된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기획하는 등 풍부한 대미협상 경험을 지닌 왕 전 서기는 시진핑 정권의 대미 외교에서 구원투수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대니얼 러셀 아시아사회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왕 전 서기가 지난해 가을 미국 정부의 최고위 관리가 된 오랜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고 전했다.
중국은 왕 전 서기 외에 왕양 국무원 부총리, 류허 공산당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 등 미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사들을 요직에 배치, 미중 경제전쟁에 대비할 것으로 보인다.
차기 정치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으로 내정된 왕양 부총리는 농업·통상 담당 부총리로 왕치산 전 서기에 이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미중 전략경제대화 수석대표를 지냈다. 그는 2013년 미중 전략경제대화 당시 양국관계를 당시 이혼소송 중이던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과 중국계 미국인 웬디 덩의 관계와 같다고 비유해 미국에서 ‘일반적인 중국 고위급 같지 않은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이력 때문에 후진타오 전 주석, 리커창 총리 등이 속한 계파인 공청단 출신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그가 최고정책 자문회의인 정협의 정점인 주석을 맡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사령탑’인 금융·경제 담당 부총리로 내정된 류허 주임은 중국 지도부로서는 드물게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미국 유학파다. 최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시 주석을 대신해 중국대표단장으로 참석, 유창한 영어실력을 뽐낸 그는 자본주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보다는 경제학자에 가까웠던 그는 2013년 시 주석 취임 이후 ‘경제책사’로 이름을 알렸으며 지난해 당대회에서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돼 지도부에 입성했다.
한편 시 주석의 비서실장을 지낸 ‘복심’ 리잔수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3월 전인대에서 상무위원장직에 오를 것이 확실시된다. 아울러 자오러지·한정·왕후닝 상무위원은 각각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상무부총리, 사상선전 담당을 맡을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