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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신성한 모독자]중세교회 권위에 도전했던 '이단아들 연대기'

■유대칠 지음, 추수밭 펴냄



‘이단’ 혹은 ‘이단아’라는 말에는 어쩐지 부정적 의미가 내포된 것처럼 느껴진다. 기존의 질서나 권위에 도전한 이를 부정적으로 묘사할 때 사용하거나, ‘사이비’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세에서 이단이란 그리스도교 외부에 있는 ‘다른 길’이자 ‘잘못된 길’을 뜻했으며, 한편으로는 매우 철학적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책 ‘신성한 모독자’는 신의 지배와 인간의 복종만이 있었던 중세 1,000년 동안 금지된 생각에 도전하며 고군분투했던 ‘거룩한 이단아들의 연대기’다.


책은 유럽과 이슬람 문화권을 아우르며 이단으로 선고받았던 철학자들 중 ‘누구나 천국에 가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에리우게나로 시작한다. 그에게 신은 선하고 사랑으로 가득하고, 누구는 저주하고 누구는 사랑하는 그런 신이 아니며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 또 지옥으로 떨어질 운명을 만들어 놓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기계와 같은 신도 아니었다. 그러나 ‘모두가 천국에 가고 구원 받게 된다’는 그의 이러한 생각은 열심히 교회를 나오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정통 그리스도교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신을 그토록 이상적으로 바라봤던 그의 생각이 ‘이단’으로 규정된 것. ‘계시 진리’라는 최고의 진리를 오직 자신만이 지닌다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에리우게나의 주장은 매우 불편했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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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베이컨은 무지개 현상을 신의 신비가 아닌 광학으로 설명해 이단이 됐다. 수학과 기하학의 원리에 따라 우주 등 자연을 읽었던 그에게 무지개는 물, 빛 그리고 공기가 만들어내는 현상이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표시이자 신의 또 다른 언어로 보긴 힘들다고 봤던 것이다. 창세기를 보면 “내가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둘 터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워진 계약의 표시가 될 것”이라고 쓰여 있다. 인간 이성이 무지개를 과학적으로 따지고 들어 신이 허락한 신성한 계약의 표시를 자연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만들어지기를 원치 않았던 교회의 판단이 바로 베이컨을 이단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 외에도 관찰과 실험에 근거한 외과 의학을 주장했던 파라켈수스, 원자론에 입각해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 현재 기준으로 보면 상식에 가까운 생각과 주장을 했던 철학자들이 중세 교회의 권위 하에서는 이단으로 탄압받았다. 결국 책은 이단이라는 규정은 이렇게 팩트와 진리에 따라 규정된 것이 아닌 당대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허상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1만6,000원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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