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아침에] '86세대'의 올림픽, 2030의 올림픽

송영규 논설위원

구세대가 못 벗어난 이념 굴레

한 순간에 부셔버린 젊은이들

현실에 발 붙인 개혁 아이콘이

평창 이후 만들 역사는 뭘까

송영규 위원


무섭게 변하는 세상이다. 30년 전만 해도 변하지 안을 것 같았던 것들이 이제는 모두 과거의 잔재였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시간이 흘렀으니 당연하겠지만 막상 당하고 나니 얼떨떨하다.

얼마 전 대학생인 아들에게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해 이것저것 물을 기회가 있었다. 돌아온 대답이 예상외였다. “남북 단일팀은 잘못됐어요. 우리가 힘들게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것이잖아요. 그렇다고 북한이 평창에 오는 게 나쁘다고 생각 안 해요. 다 함께하는 게 올림픽 정신이니까요.” 현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잘한다고는 말 못하지만 대통령에 뽑힌 지 얼마 안 됐으니 시간을 줘야 한다”고 했다. 성인이 되고 난 후 치른 총선과 대선에서 언제나 보수 진영이라고 생각하는 후보자에게 표를 던졌던 유권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나도 20대 때 과연 저랬던가.’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럽다.

소위 ‘86세대’로 통칭하는 50대들도 20대의 팔팔한 청년이었던 시절에는 올림픽이 있었다. 88 서울올림픽. 하지만 지구촌 축제를 바라보는 20대의 시각은 하나가 아니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학생운동에 몸을 담았던 ‘보라’와 올림픽 참가국 피켓을 들고 자원봉사에 나선 ‘덕선’은 당시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갈린 삶을 강요받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젊은이들은 6·10항쟁과 88올림픽을 통해 민주화의 기반을 닦기는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이후 선택은 언제나 보라 아니면 덕선 둘 중 하나였다. 그렇게 30년이 흘렀고 그것이 영원할 줄 알았다.


이 환상을 2030 세대들이 깼다. 그것도 아주 철저히 무너뜨렸다. 얼마 전 평창올림픽과 관련한 두 가지 설문이 있었다. 하나는 단일팀에 대한 것이었고 하나는 평창올림픽 그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단일팀에 대한 설문에서는 2030 세대의 82%가 반대했다. 하지만 북한이 참가하는 평창올림픽에 대해서는 10명 중 6명 이상이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구세대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들에게 단일팀 반대는 보수의 논리고 평창올림픽에 대한 기대는 진보의 시각이다. 이 둘은 융합하지 말아야 한다.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보수는 반대해야 하고 진보는 이를 방어해야 마땅했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들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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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은 이를 가볍게 무시한다. 2030 세대가 누구인가. 정의를 세우기 위해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다. 불공정한 게임을 거부하고 정의를 부르짖는 개혁의 아이콘들이다. 겉으로만 본다면 대통령의 코드와 딱 맞아떨어진다. 이런 그들이 현 정부에서 올림픽 성공을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단일팀에 반기를 들었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인정하지만 북핵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는 점수를 주면서도 가상통화 정책에는 반기를 든다. 무조건 반대도 없지만 무조건 찬성도 없다. 어느 한쪽을 편드는 데 익숙한 구세대들과는 분명 다르다. 현실에 발을 붙인 개혁가들이다.

혹자는 반란이라고 말했고 혹자는 이탈이라고 말했다. 둘 다 맞고 둘 다 틀리다. 구세대는 자신의 프레임에 맞지 않으니 반란과 이탈이 맞을 터다. 하지만 2030 세대들이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한 대학의 익명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 있다.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을 보고 반란이라니. 웃긴다.’ 이들은 그저 현실의 부조리와 부정의에 저항할 뿐이다. 이들의 현실감각과 실용 속에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이분법은 설 자리를 잃는다. 그래서 이들에게 기성세대들이 쥐고 있는 기득권은 사라져야 할 적폐청산의 대상이다.

88올림픽을 치렀던 86세대들은 민주화를 정착시켰지만 이념과 사상의 극한 대립이라는 숙제를 남겼다. 30년 묵은 이념의 굴레를 버리고 평창올림픽을 맞은 젊은 세대들은 과연 무엇을 무너뜨리고 무엇을 이룰까.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내일 이후 그들이 세울 역사의 이정표가 자못 궁금하다. /skong@sedaily.com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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