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회사 회식자리에서 직장 상사에게 “술을 그만 마시자”고 말했다가 소주병으로 머리를 맞고 여기저기 두들겨 맞았다. 도망쳐도 계속 쫓아와 결국 구급차에 실려갔다.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아르바이트했던 B씨는 점주의 폭언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그러자 그에게 고소장이 날아들었다. 일하는 동안 모든 직원들이 점심으로 먹었던 패스트푸드 값을 내라는 점주의 고소장이었다. 한 보험회사는 특정 직원들의 성과를 일부러 나쁘게 만들기 위해 업무시간에 독후감 쓰기나 책꽂이 정리를 시키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3일 국회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노동단체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직장 내 괴롭힘 사례들이다. 직장갑질119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사례를 수집한 뒤 직접 사례자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청취해 이런 사례들을 취합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된 ‘직장갑질’ 사례들은 충격적이었다.
직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괴롭히는 행위들이 대부분으로 마치 중·고등학교에서 발생하는 ‘왕따’나 집단 따돌림과 비슷했다.
명백히 실제 고용계약과는 관계없는 업무일 뿐만 아니라 인권 침해적인 요소가 있지만 피해자들은 이에 대해 항의의 말조차 꺼내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괜히 문제를 꺼냈다가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할지 몰라 그냥 참고 넘어갔다는 것이다. 실제 한 피해자는 “지역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지만 최저임금 위반이나 임금체불 등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사례가 아니면 접수하기 어렵다는 답을 듣고 그냥 돌아서야 했다”고 전했다.
김정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년 이상 직장경험이 있는 만 20~64세 임금근로자 1,506명을 한 달간 할당 추출해 설문한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괴롭힘을 당했을 때 공식적으로 시정조치를 요구한 사람은 12%에 불과했고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이유로 “개선될 것 같지 않다”와 “직장 내 관계가 어려워질 것 같아서”라고 응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전문가들은 이날 토론회에서 정부의 관리·감독 강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수경 직장갑질119 활동가는 “고용부 근로감독관들이 일이 너무 많아 임금체불 문제만 해결하기도 버겁다”며 “노동인권교육을 받은 감독관들을 보강하거나 조사인력을 충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30인 미만 사업장에도 고충처리제도 설치 △고충처리시스템의 세부 절차와 익명성 보장 △직장 내 괴롭힘 산업재해 인정기준 개선 등을 제안했다. 홍 교수는 “다양한 수단들을 근로자에게 제공해 언제든 피해를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