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다

권구찬 논설위원

'이민자 나라' 삭제·수입규제발동

美 주도 경제질서 부정 '강공'

예고된 공세…우린 뭘 준비했나

권구찬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폭주에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하나는 반이민 정책이고 또 다른 것은 관세 폭탄이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이민자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외국산 상품 유입이 미국 기업을 망친다는 것이다. 물론 실상은 다르다. 미국 거대 혁신기업 2곳 가운데 1곳의 창업주가 이민 1세대 또는 2세대다. 애플과 구글·페이스북·테슬라 등의 창업자가 그렇다. 이들 드리머가 없었다면 그 많은 혁신기업 일자리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싶다.


반이민 정책은 트럼프의 가족사를 보면 뜻밖이다. 미국인 치고 이민자 후손이 아닐 턱이 없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고작 이민 3세에 불과하다. 흙수저 조부의 아메리칸드림 덕에 금수저가 된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자의 나라를 깡그리 부정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불법 이민자를 막겠다고 멕시코 국경에는 높이 9m의 장벽을 쌓고 있다. 여기에 드는 예산이 무려 250억달러다. 지난달 이민국의 강령에서 ‘이민자의 나라’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은 압권이다. 먼저 온 이민자들이 후발자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은 ‘아메리칸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에 다름이 아니다.

미국 우선주의는 통상에서 절정에 이른다. 걸핏하면 중국에 대고 험한 말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미국인은 값싼 중국 제품 덕에 수십년간 풍요로운 소비가 가능했다. 소비야말로 미국 경제를 돌아가게 한 1등 공신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구실로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 폭탄을 터트릴 태세다.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 덕에 자동차를 만들고 탄산음료 캔을 만드는데도 말이다. 일방적 횡포가 아닐 수 없다. 관세 폭탄의 근거는 더 억지스럽다. 문제의 무역확장법 제정 취지는 냉전 시절 자유진영의 경제적 유대를 강화해 공산권을 대항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친구와 적들이 미국을 이용해 먹는 바람에 철강과 알루미늄 산업이 죽었다”고 트윗했다. 일자리를 위협한다면 누구든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일자리 냉전 시대를 알리는 선전포고다.


우리가 알던 미국은 달라졌다. 10년 전 사상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을 선출해 다양성과 역동성의 힘을 과시한 미국이 아니다. 동맹국을 배려하고 소수 인종과 불법 이민자까지 포용하던 시절과 천양지차다. 과거 정부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불리하다고 주장하고 미국 주도로 창설했음에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도 불만이다. 미국에 의해, 미국을 위한 세계화가 미국에 의해 부정되니 이런 자가당착도 없다.

관련기사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로서는 최소한 11월 미국 중간선거 때까지 시련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곧 한미방위비 협상이 시작된다. 막대한 안보청구서가 날아올 것은 불문가지다. 다음 달 나올 재무부 환율보고서에서 또 어떤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 주력 수출품 반도체와 자동차까지 전선이 확대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시계추를 거꾸로 돌린 미국을 상대하려면 미국 우선주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현실적 대처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지만 어쩐지 힘에 부쳐 보인다. 동병상련의 국가끼리 반보호무역 연대를 형성하고 맞보복으로 타격받을 워싱턴 정가를 설득하는 일이 우선일 것이지만 유럽 등 다른 나라의 영향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다. 혈맹한테 이럴 수 있느냐고 남 탓할 계제가 못 된다. 트럼프의 신고립주의는 진작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이제 와 강대국의 횡포 운운하는 것은 속수무책이라는 실토밖에 안 된다.

주지하다시피 트럼프 대통령은 거래의 전문가다. 여건은 불리하지만 한미 FTA 개정 협상은 그나마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할 수단이 된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당하게 맞서야 하지만 관건은 주고받기다. 우리는 뭘 주고 뭘 얻어낼 것인지, 국익의 개념을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 달라진 미국에 대처할 첫 단추는 여기부터다.

chans@sedaily.com

권구찬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