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리고 있던 로봇이 긴 목을 높게 들며 머리 부분에 달린 카메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스킵’ 역할을 하는 반대편 로봇의 분석 정보를 공유한 뒤 다시 목을 아래로 접어 내렸다. 곧이어 빙판 위로 미끄러지듯 서서히 스톤을 밀어 보냈다. 스톤은 하우스 앞쪽에 있던 4개의 다른 스톤을 모두 피하며 정확하게 하우스 가운데 지점에 안착했다.
8일 경기도 이천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 컬링장에선 세계 최초로 사람과 로봇의 컬링 경기가 벌어졌다. 로봇의 이름은 ‘컬리(Curly)’, 세계 첫 인공지능(AI) 컬링 로봇이다.
컬리는 지난해 4월 고려대·울산과학기술원·엔티(NT)로봇 등 8개 기관에서 60여명의 연구원이 참여해 개발했다. 머리 부분엔 AI 소프트웨어(SW)인 ‘컬브레인(CurlBrain)’이 탑재돼 경기 상황과 빙질 등에 따라 실시간으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컬브레인은 지난해 11월 일본 인공지능 컬링 SW 경진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컬리는 현재까지 1,321회의 국제컬링경기와 16만 개의 투구샷 데이터를 학습했다.
실제로 이날 경기에서 컬리는 하우스 주변의 상황에 따라 두 개 스톤을 ‘더블 테이크아웃(Double Take-out)’시킨 뒤 본인의 스톤을 하우스 안으로 집어 넣는다든지 하우스 앞쪽으로 가드를 세우는 등 다양한 투구를 선보였다. 이성환 고려대 뇌공학과 교수는 “올림픽 경기를 보면 선수들의 드로우(Draw)와 테이크아웃 성공률이 80~85% 정도면 우수한 수준”이라며 “컬리의 드로우 성공률은 60~65%이고 테이크아웃은 80% 정도”라고 설명했다.
사람과의 첫 경기 결과는 어땠을까. 1엔드로만 진행된 사전 시연행사에선 컬리가 강원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 선수들을 1대 0으로 이겼다. 스위핑 로봇의 경우 올해 하반기에 개발될 예정이어서 이날 경기는 스위핑 없이 진행됐다. 반대로 오후에 열린 본 경기는 인간의 승리였다. 1엔드에선 춘천기계공업고 선수들이 1대 0으로 승리했으며 2엔드 역시 선수들이 2대 0으로 이겼다. 2엔드에선 선수들도 컬리처럼 스위핑을 하지 않았다. 컬링 로봇과 경기를 치른 선수들은 “로봇이 전략을 잘 짜는 것 같았고 스킬이 다양해서 당황스러웠다”며 높은 평가를 내렸다.
/이천=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