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부터 빼곡하게 적어놓은 신년의 다짐들이 후줄근해진 종이 위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요즘이다. 자신을 스스로 저녁형 인간이라 규정하면서도 매년 습관처럼 적어넣은 ‘아침형 인간이 되자’는 문구가 눈에 띈다. 내 안에서 비롯됐을 리 없는 이 욕망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십수 년도 더 된 자기계발서가 설파한 복음의 효과는 컸다. ‘아침잠은 인생에서 가장 큰 지출’이고 ‘아침을 지배하는 자가 성공한다’며 외환위기를 겨우 벗어난 2003년의 한국 사회에서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켰던 ‘아침형 인간’(사이쇼 히로시 지음, 한스미디어 펴냄)은 아직까지도 뭇 저녁형 인간들에게 야릇한 죄책감을 안겨준다.
물론 아침형 인간을 운운한다면 자기계발서 시장에선 다소 유행에 뒤처지는 독자다. 내 안에 잠들어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는 거인을 깨우고 성공을 향해 우적우적 걸어가는 타이탄이 되라고 설파하는 미국식 자기계발서로 이미 한 시대가 저물었고 요즘의 화두는 단연 겸양과 수신이라는 아시아적 가치의 총아를 담은 자존감 키우기다. “어른이라는 따분한 벌레들이 야금야금 꿈을 좀먹더라도 나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 뿔이 자라난 어른이 될 테니 억지로라도 웃어야지(문문의 ‘비행운’)”라고 노래하는 청춘들은 ‘세상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니 나라도 사랑해 보자’며 지갑을 열고 임시처방전을 사들인다.
외환위기 이후 출판계에 지지 않는 태양으로 통했던 자기계발서는 이렇게 시대에 따라 언어를 달리하며 우리의 욕망을 조각하고 또 거울처럼 비췄다. 정직하지만 가난한 아버지 대신 냉혹한 자본가 마인드를 갖춘 친구 아버지를 롤모델로 삼아 성공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부자아빠와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 지음, 민음인 펴냄)는 부자라는 단어조차 입 밖에 꺼내길 주저했던 한국인의 마음 속에 욕망의 불을 지폈다. 특히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 지음, 진명출판사 펴냄) ‘익숙한 것과의 결별’(구본형 지음, 생각의 나무 펴냄) 등과 함께 외환위기 직후 쏟아져 나온 대다수의 자기계발서는 대량해고의 불안 속에서도 멈추지 말고 나만의 길을 따라 전진하라고 부추겼다. 그렇게 추락을 막아줄 안전장치 하나 없이 너도나도 벼랑 끝에 몸을 던졌다. 5년을 버티는 자영업자가 10명 중 2명도 안 되는 ‘자영업자 600만 시대’가 그렇게 열렸다.
심리학과 자기계발서가 결합하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였다. ‘긍정의 힘’(조엘 오스틴 지음, 글로세움 펴냄)과 ‘시크릿’(론다 번 지음, 살림비즈 펴냄)은 생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종교적 방식의 교리를 설파했다. 어느덧 강퍅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긍정의 언어조차 버거워졌을 때쯤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박경철 지음, 리더스북 펴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같은 멘토형 자기계발서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청춘콘서트 등 힐링형 강연 시장이 이때 열렸다. 글밥과 말밥이 결합하면서 저자 풀은 더욱 풍성해졌다.
주목할만한 것은 더 이상 신분상승의 꿈을 부추기는 자기계발서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극심한 양극화와 취업난 속에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부추기는 자기계발서는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되는 단군신화만큼이나 아득한 탓이다. 한때 주목받았던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같은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류의 ‘꼰대’형 멘토링도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변혁 없는 세상의 자기계발서는 메스나 채찍이 아닌 ’박카스’나 ‘후시딘’ 정도가 적당하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자기계발서만 1,000여권을 탐독했다는 이원석 문화평론가는 ‘대한민국 자기계발 연대기’에서 당대 대중들의 욕망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욕망을 표현할 효과적인 언어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 대표적 자기계발서들이 우리 사회의 바로미터라고 지적한다. 자기계발서의 열혈 독자였지만 그의 시선은 곱지 않다. ‘아침형 인간’에서 자기계발의 외피를 쓴 초과 노동 장려를 지적하고 ‘미움 받을 용기’에서는 병든 사회가 벼랑 끝에서 택한 독한 위로의 힘을 해부한다. ‘하면 된다’ 식의 각자도생 이데올로기를 도려내고 나면 우리 사회의 민낯이 고개를 든다. 자조를 강조하는 자기계발의 정신으로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서로계발 (each other help)’이라는 연대와 공동체의 힘으로 왜곡된 정치경제 체제를 고쳐나가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여기서 비롯됐다.
자기계발서가 지배 이데올로기에 기생한다거나 봉사한다는 식의 음모론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자기계발서 특유의 ‘내 탓이오’ 식 교리에 대해선 한마디 해야겠다. 권력 관계를 활용한 성폭력이든 불합리한 유리 천장이든 사회 구조적 문제에 부딪혀 날개 찢긴 피해자 대다수가 갖게 된 자조의 문화도 결국 자기계발서 안에 똬리를 튼 각자도생 교리에 기대어 있다. 사회구조가 어떻든 부와 권력, 명예를 획득할 수 있다는 신화, 사회의 왜곡된 구조가 문제인데 개인의 노력에서 해법을 찾는 어리석은 처방은 이제는 뿌리째 버려야 할 때가 아닐까. 1만4,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