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단독]경단녀에 질 좋은 일자리 준다더니...정부 취업정보엔 청소부·식당일만

■본지, 여가부 '새일센터' 보니

단순사무직 36건으로 가장 많아

한달 급여도 164만원 최저 수준

‘○○아파트 환경 미화원, 주 평균 33시간 근무, 월급 128만원 이상’, ‘□□어린이집 보육 도우미, 주 평균 20시간 근무, 월급 78만6,000원’

인력 사무소에 나붙은 구인 정보가 아니다. 정부의 유일한 경력단절여성(경단녀) 취업 지원 기관인 여성새로일하기센터(새일센터)에 올라온 ‘경단녀 전용’ 일자리 정보다. 무역회사에서 일본 수출 업무를 담당하다 결혼 후 세종시에서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이시연(32·가명) 씨는 이를 보고 “경단녀들이 일을 하지 않고 육아에만 전념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경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제공하는 경단녀 일자리 정보를 보면 대부분 단순 사무직과 식당 일, 청소원인데, 무시 받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 장관들이 나서서 “경단녀들에게 질 좋은 일자리를 제공해 저출산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정부조차 “임신·육아의 빈 시간만 채우는, 질 낮은 일자리만 주면 된다”는 인식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6일 서울경제신문이 여성가족부 새일센터에 올라온 최근(21일 기준) 100건의 일자리 정보를 분석해본 결과 단순 문서 처리 업무를 맡는 단순 사무직이 36건으로 가장 많았다. 조리 업무가 16건, 간호 조무 9건, 사회복지 7건, 판매원 7건, 청소원과 제조 업무가 각각 3건으로 뒤를 이었다. 경력을 살려 일할 수 있는 정규 사무직은 8건에 불과했다.


100건의 구인 정보가 제시하는 한 달 평균 급여는 164만원으로 집계됐다. 단순 사무직의 평균 급여는 178만원이었고,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정규 일자리(월 급여 범위를 200만~500만원으로 제시한 구인 정보 제외) 7건의 평균 급여도 210만원 수준이었다. 대기업 평균 월 급여가 495만원, 중소기업이 251만원이라는 점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또 100건의 일자리 정보 중 20건은 시급이나 일급으로 계산하는 단기간 일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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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정보는 집계하는 방식부터 문제가 있다. 정부는 2015년부터 각 부처로 모이는 일자리 정보를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워크넷’으로 통합 관리해오고 있는데, 새일센터에 모이는 정보는 워크넷에 모인 일자리 정보 중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만 따로 추출해 제공한다는 게 여가부의 설명이다. 워크넷에서는 청년들을 위해 임금·고용안정 우수 기업 등의 강소기업을 분류해 정규직 공개채용 정보를 제공하는 반면 새일센터가 제공하는 정보는 저임금·단기간·육체노동 위주의 일자리로 가득 차 있다. 여가부의 한 관계자는 “홈페이지에 새일센터가 하는 상담 업무나 직업교육훈련 정보만 넣는 것보다 일자리 정보도 넣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워크넷과 연계해 서비스 차원으로 정보를 제공한 것”이라며 “국민들 입장에서 질 낮은 일자리 정보만 있다고 오해할 소지가 분명 있어 보이기 때문에 해당 정보 제공에 대해 다시 검토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해 말 여성 일자리 대책을 내놓은 지 3개월 만에 청년에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일자리 대책을 발표한 것도 경단녀들에겐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지난해 말 정부는 경단녀 재고용과 고용유지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여성 직원들이 육아휴직을 한 후에도 중소기업이 재고용하면 인건비 세액 공제를 기존 10%에서 30%로 늘려주고 중견기업의 경우 15%까지 확대해주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그나마도 경단녀를 고용했던 기업에만 적용돼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최근 내놓은 청년 일자리 대책은 조건이 파격적이다.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들의 소득 증대를 위해 1,000만원 이상 지원해주고, 해당 기업에도 3년간 2,700만원까지 지원해준다. 경단녀를 뽑으려 했던 중소기업들이 청년들로 대체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 셈이다. 한 중소기업의 여성 CEO는 “사실 나도 여성이지만 육아로 인해 업무 시간의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경단녀를 선뜻 뽑기란 쉽지 않다”면서 “청년보다 경단녀를 뽑을 때 혜택이 더 많아야 기업들이 경단녀들에게 질 좋은 일자리를 제안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강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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