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으로 ‘통일과 남북관계 화해, 경제협력’이 활발하게 논의되는 시기가 되면 역사적인 두 사건을 떠올려 본다. 독일의 통일과 구소련의 붕괴다. 돈이 어디로 갈지 주판을 튕겨보는 일들이 부차적이고 속물처럼 보일 수 있으나 투자자 입장에서 과거의 사례에서 시사점을 찾고자 하는 마음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타이거펀드의 로버트슨이 동료에게 남겼던 한마디, “이건 빅딜이다”처럼 숨길 수 없는 본능이다.
지난 1990년 10월3일 공식적으로 통일독일이 출범하기까지는 극적인 상황의 연속이었다. 소련이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 전개와 냉전체제의 와해를 경험하던 중 동독 주민들의 개혁 욕구는 더없이 강화됐다. 고르바초프가 공산주의 체제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1989년 10월 동독수립 4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지만 이후 불과 10일 만에 최장기 동독 공산당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가 실각됐다. 그리고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다. 갑작스러운 통일이었지만 그 위업이 달성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지난한 노력이 있었다. 1969년 서독의 브란트 총리가 동방정책을 표방한 후로 20년간 9차례의 정상회담이 이어졌고 점진적인 개방과 경제협력과정에서 1972년 경제·과학·기술·문화·통신·스포츠·환경 분야에서 상주 대표부가 설치되며 동서독 간 연간 방문 인구는 통일 전 이미 800만명에 이르게 됐다.
2018년은 1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6·15 공동선언을 한 지 18년이 지난 해다. 독일과 소련의 사례에 비춰보면 질적인 관계 변화의 노력이 설령 부족하다 해도 20년 동안 노력한 결과인 것이다. 그 시간은 소련 붕괴 직전의 드라마틱한 공산당 쿠데타와 진압에서처럼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다. 천하의 헤지펀드 타이거펀드가 최고의 딜이라며 첫 해외 투자로 나섰던 독일 통일펀드는 금융투자확대를 겨냥해 도이치은행을 인수하고 인프라투자 확대를 예상해 VEBA·F&G 등을 매수하지만 투자 2년 만에 성과가 썩 좋지 않자 마침내 투자를 회수하기 시작한다. 통일독일의 내수 시장이 본격 확대되고 통일 편익이 통일 비용을 비로소 압도하기 시작하자 통일 당시 1600이던 닥스지수는 우호적 글로벌증시 활황 속에 휴고보스 900%, 바이엘 500% 등 주요 내수·의약 종목들의 급등으로 10년 만에 7,900을 기록한다.
수년 전 급히 조성됐던 통일펀드 중 대부분이 청산되고 한두 개 펀드가 이름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상회담이 한창인 지금의 시장은 통일·남북 경협 테마주들의 열기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 뜨겁기만 하다. 타이거펀드처럼, 테마같이 조성됐던 통일펀드처럼, 불나방 테마주처럼 가서는 너무나도 명확한 ‘남북 화해와 장기적으로는 통일’의 과실을 얻을 길이 없다. 단편적이지만 사례들은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시간이 점차 무르익어가는 중이란 점과 그럼에도 온갖 우여곡절의 지난한 과정이 그 시간 안에 녹아 있었다는 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