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납기 맞추려 회사 쪼개고 허위근무…기업들 '울며 겨자먹기' 꼼수

[산업현장 뒤흔드는 親勞정책-근로단축]

근로시간 피해 4인 별도법인 설립

해외 수주 경쟁력 약화도 불가피

업무고과 걱정에 보고없이 주말근무

노사, 암묵적 편법·탈법 자행도

서울 시내의 한 사무실에서 직장인들이 야근을 하고 있다. 주당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시행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으면서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서울 시내의 한 사무실에서 직장인들이 야근을 하고 있다. 주당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시행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으면서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직원 수가 300명이 넘는 한 대형 건축설계 업체는 최근 법인을 2개로 분리하기로 했다. 업무능력이 뛰어난 직원 4명을 선발해 별도로 법인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굳이 4명으로 추린 것은 법정 근로시간 적용이 5인 이상 사업체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즉 법정 근로시간 적용을 피할 수 있는 소수정예 멤버로 꾸려진 별도 법인을 통해 주당 52시간 시행으로 초래되는 업무 공백을 메운다는 복안이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발주처가 정한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하는 설계회사 입장에서 법정 근로시간을 곧이곧대로 지키게 되면 프로젝트 자체를 진행하기 어렵다”며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라고 말했다.

주로 해외에서 사업하는 대형 건설사의 고민도 깊다. 한 건설사 임원은 “중동 등 날씨가 더운 지역에서 공사를 딴 경우 특정 기간에 집중적으로 노동력을 투입해 공정률을 높여야 한다”며 “바뀐 제도대로 하면 공사기간이 지연될 수밖에 없어 심각한 분쟁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근로시간 단축의 여파로) 우리 건설사의 해외 수주 경쟁력도 약해질 것”이라며 “정부가 이런 문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숨 쉬었다.

오는 7월부터 300인 이상 기업부터 주당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면서 기업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근무시간을 크게 줄인 상태에서 일은 일대로 해내야 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 이만저만 아니다. 갖가지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홈쇼핑 업계는 야근이나 주말근무가 많기로 악명높다. 근무시간 보고는 이미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형태가 태반이다. 한 대형 홈쇼핑 관계자는 “야근이 필요한 직원에게 강제로 퇴근을 강요하고 있지만 일은 해야 돼 주말근무는 보고하지 않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업체의 한 관계자도 “유연근무제가 도입되면서 각자의 업무시간이 달라 회의도 쉽지 않다”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결국 인력 충원을 해야 하는데 회사 입장에서 선뜻 결정하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식의 편법 근무는 이미 업종 전반에 만연될 조짐이다. 한 전자 업체 직원은 “오후6시만 되면 퇴근을 독려하고 7월부터는 PC를 아예 끄겠다고 하는데 그래도 일은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근무시간 준수한다고 일을 엉망으로 하면 업무 고과는 누가 책임지냐”고 말했다. 그는 “집에서 알아서 일하는 분위기”라며 “노사가 암묵적으로 편법과 탈법을 자행하는 꼴”이라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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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당 52시간 단축 시행이 기업의 채용계획도 바꾸고 있다. 직원 수가 300명에 가까운 업체들이 주로 여기에 속한다. 한 정보기술(IT) 업체는 올 초만 해도 수십 명을 채용할 계획이었지만 최근 이를 접었다. 이미 직원 수가 290명을 넘어 몇 명만 채용하면 7월부터 당장 근로시간을 줄여야 하는 탓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관련 부서에서 인력을 확충해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부담 때문에 포기했다”고 전했다.

그런가 하면 경북 지역에 소재한 완성차 2차 협력사의 A대표는 신규 시설 투자를 놓고 고민 중이다. 이 회사는 임직원 수가 70명 안팎으로 2020년부터 근로시간 단축을 적용받는다. 앞으로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인력을 추가로 채용해야 하지만 지방에서 숙련된 인력을 구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결국 지금부터 자동화 설비 도입을 준비해야 1년 반 뒤 벌어질 인력 미스매치에 대비할 수 있다. 문제는 투자비용이 3억원을 넘는다는 점이다. A대표는 “프레스 설비를 자동화하면 5명의 근로자를 대체할 수 있지만 5억원이 필요하다”면서 “연간 5명의 인건비가 1억7,000만원 정도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당장 3억원이 넘는 돈이 추가로 들게 돼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의류를 판매하는 한 업체도 걱정이 많다. 최근 해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며 수출계약을 체결했지만 근로시간 단축으로 생산업체가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서다. 이 회사 대표는 “갑작스럽게 주문이 들어올 경우 과거처럼 공장을 돌려 납품일을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동훈·김연하·허세민기자 hooni@sedaily.com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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