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불씨를 걷어내면 사람이 보인다

조종묵 소방청장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입니다.”

이 교통안전 슬로건을 봤을 때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지금 범정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화재안전 특별대책의 방침과 맥이 통하기 때문이다. ‘불 화(火)’의 불꽃 부분을 걷어내면 ‘사람 인(人)’으로 변하는 것이 화재안전 특별대책 포스터의 기본 디자인이다. 원래 ‘火’는 불이 타오르는 형상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지만 그 속에 ‘人’ 같은 모양이 숨어 있음에 착안한 것이다. 즉 위험요인을 걷어내고 사람을 보자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듯이 안전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우선하는 정책은 어떤 모습일까. 일찍이 조선조 세종대왕은 그것을 직접 보여줬다. 세종은 당시 기승을 부리던 방화범을 색출하고 부주의로 인한 실화를 줄이기 위해 예방 단속을 했음은 물론이고 범죄자는 강력히 처벌했다. 신분의 고하와 귀천을 고려할 리도 만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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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세종은 사람을 먼저 생각했다. 비록 실화를 했더라도 노약자·장애인·임산부·어린이는 처벌하지 말도록 했다. 재난 약자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본 것이다. 또 비록 실화를 해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일지라도 부양해야 할 부모와 자식이 있는 가장에 대해서는 처벌을 유예하는 조치를 했다. 농사철에는 집으로 돌려보내 추수까지 마무리하고 오도록 했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판단한 셈이다. 만일 그러한 배려 없이 무조건 처벌만 우선한다면 그의 가족은 굶주림으로 더 큰 고통을 당해야 함을 감안한 것이다. 아마도 그 실화자는 이러한 임금의 배려에 깊이 감동했을 테고 또 나중에 벌도 달게 받지 않았을까.

오는 7월26일은 소방청이 독립청으로 승격돼 개청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소방청 개청은 앞서 세종이 연이은 대형 화재에 대한 대책으로 1426년 소방 전담 행정기관인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한 지 590년 만의 일이었다. 세종은 단순히 행정기관만 설치한 것이 아니라 화재 예방부터 진압까지 국가제도를 정비하고 강력히 추진했다. 최근 정부는 화재안전의 근본부터 바로잡기 위해 청와대에 ‘화재안전대책 특별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고 강력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 대책의 하나로 55만여개소의 다중이용시설 등에 대한 화재안전 특별조사가 7월9일부터 내년 말까지 전국적으로 실시된다. 이런 대규모의 조사가 범정부적으로 추진되는 것은 소방 역사상 처음이다.

화재안전 특별조사의 기본 방침은 사람이 기준이다. 그래서 단순히 법령 준수 여부만 점검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해 이제는 사람을 기준으로 종합적으로 조사한다. 그리고 위험요인이 있는 건물은 안전 컨설팅을 해 필요한 조치를 하려는 건물주를 지원한다. 우리 모두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면 안전한 대한민국의 길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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