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최저임금 차등적용 무산 후폭풍] "폐업하고 알바가 나아"…상인들 "지불유예·불복종 운동 할 것"

■ 협상 결과에 격앙된 자영업자

"연봉 7,000만원 받는 교수들이

노동계 편에 서는게 온당하냐"

1인 시위 확산 대국민 호소 등

소상공인聯 대응책 마련 분주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5층 회의실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 측 긴급 대책회의에서 위원들이 업종별 차등 적용 부결을 규탄하며 향후 대책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제공=중기중앙회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5층 회의실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 측 긴급 대책회의에서 위원들이 업종별 차등 적용 부결을 규탄하며 향후 대책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제공=중기중앙회



“최저임금을 줄 여력조차 안 되는 사업장만이라도 다른 기준을 적용해 달라는 게 무리한 요구입니까? 그나마 안고 있던 한 줄기 희망마저 빼앗긴 심정입니다. 애들 학원이라도 보내려면 가게 문을 닫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뛰는 수밖에 없습니다.” (분식점을 운영하는 A씨)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간부들과 자영업자들의 아파트 중에 어느 곳이 더 비싼지 비교해 보세요. 직원 월급을 줄 형편이 안 돼 적금을 깨는 자영업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봉 7,000만원 넘게 받는 교수들이 공익위원이랍시고 노동계 편에 서는 게 온당한지 모르겠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사용자위원 B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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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이 무산됐다는 소식이 들리자 11일 온종일 소상공인업계와 중소기업계는 자체 폐업과 최저임금 불복종까지 언급하며 격앙된 모습이었다. 경기 침체와 매출 급감 등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린 가운데 최후의 보루로 여겼던 차등 적용마저 무산되면서 존폐 자체를 고민하는 것이다.

서울 후암동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문도환(가명) 씨는 연내 점포를 처분할 계획이다. 간장게장 전문점을 표방하는 문씨의 가게는 남산 인근을 찾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올렸지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 이후 중국인 여행객 급감으로 매출이 줄어든 데 이어 올 들어서는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문씨는 “매달 버는 돈이 150만원이 안 되는데 저녁에 4시간만 아르바이트를 써도 인건비 부담이 상당하다”며 “정작 내 손에 쥐는 돈이 최저임금도 안 되는 상황에서 가게를 계속 운영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경기 별내신도시에서 피자가게를 운영하는 남도현(가명)씨는 직원 4명 중에 한 명을 내보낼 계획이다. 4명의 직원을 2조로 나눠 운영하고 있지만 월 매출 1,500만원 가운데 인건비 비중이 25%를 넘자 인원 감축을 결심한 것이다. 남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인건비 비중이 20% 미만이라 버틸 만했는데 올해는 임금이 너무 올라 감당할 수가 없다”며 “노동계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40% 넘게 올리려 한다는 기사를 보고는 밤잠까지 설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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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형석(가명)씨는 지난해 말부터 보조미용사 없이 혼자 일을 하고 있다. 주로 단골 고객이라 예약제로 운영하며 커트나 염색은 물론 샴푸와 드라이 등 뒤처리까지 혼자 하는 것이다. 김씨는 “기술이 전혀 없는 보조 한 명을 써도 월급으로 나가는 돈이 160만원을 넘어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우리처럼 5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만이라도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며 “직원이 사장보다 더 많이 가져가면 누가 창업을 하고 싶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인건비 부담이 큰 소공인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기술자를 고용해야 하는 소공인들은 인건비 인상에 따른 충격파가 커 ‘최저임금 인상=폐업’으로 받아들인다. 간신히 직원 고용을 유지해도 마진이 줄거나 손실이 커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문래동에서 30년째 철공소를 운영하는 최치욱(가명)씨는 “직원들 모두 최저임금 이상을 받고 있지만 최저임금 인상 폭만큼 연봉 조정을 요구한다”면서 “고용을 유지하려면 공급가를 올려 최저임금 인상분을 보전해야 하는데 공급가는 지난해 수준에 묶여 있고 인건비 부담만 늘어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스크팩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민우혁(가명) 대표 역시 영업이익이 평균 미만인데다 일용직 비중이 높아 업종별 차등 적용을 누구보다 기대했다. 민 대표는 “마스크팩 시장이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소비자 가격을 올릴 수 없는 구조”라며 “원부자재 값과 인건비는 계속 올라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가 쌓이는데도 멈추지 못하고 있다”며 하소연했다. 가뜩이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심한 상황에서 체력이 약한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벼랑 끝에 내몰리며 격차를 벌리는 양상이다.

이근재 한국외식업중앙회 서울시협의회장이 ‘최저임금 5인미만 사업장 차등 적용’ 팻말을 들고 있다./사진제공=소상공인연합회이근재 한국외식업중앙회 서울시협의회장이 ‘최저임금 5인미만 사업장 차등 적용’ 팻말을 들고 있다./사진제공=소상공인연합회


김대준 한국컴퓨터소프트웨어판매업협동조합 회장이 ‘최저임금 5인미만 사업장 차등 적용’ 팻말을 들고 있다./사진제공=소상공인연합회김대준 한국컴퓨터소프트웨어판매업협동조합 회장이 ‘최저임금 5인미만 사업장 차등 적용’ 팻말을 들고 있다./사진제공=소상공인연합회


현장의 격앙된 분위기 못지않게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석했던 사용자위원들도 강하게 반발하며 향후 예정된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 불참을 전면 선언했다.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사용자위원 긴급 대책회의에서 권순종 소상공인연합회 부회장은 “가장 약한 고리에 놓인 영세 소상공인과 여기에 속한 취약계층의 근로자들을 한 닭장 속에 가둬 놓고 우리끼리 싸우라고 내몰고 있는 형국”이라며 “취약계층의 근로자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고용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공익위원들이) 현장의 이런 아픔을 외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복규 전국택시운수사업조합연합회 회장은 “올해로 7년째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석했는데 올해 유독 (공익위원들이) 노동계의 편을 들면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며 “공익위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진심을 다했는데 단 한 명도 소상공인의 입장에 서지 않은 것을 보면서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업종별 차등 적용 무산으로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연합회 측은 지난 10일 저녁 긴급회의를 소집한 데 이어 이날 저녁에도 회의를 갖고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최저임금 지불 유예, 최저임금 불복종 운동 등을 통해 실력행사를 벌인다는 방침이다. 특히 10일부터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1인 시위를 더욱 확산시켜 정부 측과 국민들에게 호소한다는 계획이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들의 생존이 달린 최저임금 문제에 가장 공정해야 할 공익위원들이 노동계 편에 선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소상공인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최저임금 인상안은 어떤 명분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며 “결국 소상공인이 저항권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며 집단행동에 나서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정민정·박해욱·심우일·김연하기자 spooky@sedaily.com

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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