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자본이 넘치는 시대에…아직도 1982년에 고정된 시선

이철균 경제부장

文대통령 은산분리 완화 신호에

진보진영 즉각 반대목소리 높여

제조업 자금 직접조달 더 많은데

30년 전 사고에 갇혀 규제 고집

이철균



금융의 탈규제 영향으로 정부는 지난 1981년부터 보유하고 있던 은행의 지분을 팔기 시작한다. 한일은행을 시작으로 해 제일은행·서울신탁은행·조흥은행(1982년)의 주식을 매각했다. 신규은행의 설립도 허용한다. 신한은행(1982년)과 한미은행(1983년)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다. 정부는 제2금융권에 대한 진입 장벽도 낮췄다. 대기업들은 너도나도 제2금융권에 뛰어들었다. 1982년에만 12개 단기금융회사와 57개의 상호신용금고가 만들어졌다. ‘재벌의 제2금융권 사금고화 경향’이 나타난 것도 이때부터다.

급기야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필요성이 커졌고 정부는 산업자본(기업)이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막는 금산분리제도를 도입(1982년)한다. 동일인이 보유한 은행주식의 한도를 8%로 제한하는 게 골자였다. 숱한 논란을 거치면서 강화와 완화를 반복하다가 현재는 은행법에서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 한도를 4%로 제한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나 케이뱅크 등 인터넷은행 역시 같은 기준으로 적용받고 있다.

은산(금산)분리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카카오뱅크를 방문한 자리에서 “은산분리라는 대원칙을 지키면서 인터넷전문은행에 한정해 혁신 정보기술(IT) 기업이 자본과 기술투자를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힌 것이 기폭제가 됐다. 진보진영은 곧바로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재벌개혁의 중대한 후퇴이며 국민에 대한 약속 위반(이정미 정의당 대표)”부터 “은산 분리 완화하면 재벌 경제력 집중 우려(경실련)” 등까지. 은산분리를 완화하는 것 자체가 개혁에 작은 틈을 줘 개혁의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은산분리 완화를 참여정부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빗대기도 한다. 왼쪽 깜빡이를 켠 채 오른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한미 FTA부터 보자. 2006년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장사꾼 논리’와 ‘국익’을 앞세웠다. 여당 내의 소장파 의원들은 물론 양대노총·시민단체·문화예술인 등의 저항이 거셌다. 한미 FTA를 체결하면 미국의 속국이 된다는 식의 논리였다. 뼛속 깊은 반미(反美)주의다. 노 대통령은 그래도 한미 FTA 협상을 관철했고 2007년 9월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하지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결국 협상 타결의 과실은 이명박 대통령의 몫으로 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협상을 관철 시켰을 정도로 한미 FTA는 가장 성공적인 협상으로 꼽혔지만 진보진영의 무턱댄 반대가 되레 국정운영의 동력만 약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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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마’가 된 금산(은산)분리라고 다를까. 완화하면 마치 재벌의 사금고가 된다는 논리는 수십년째 그대로다. 인터넷은행에 국한해 IT 기업에 투자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게 문 대통령이 밝힌 은산분리 완화의 핵심이다. 계류된 법을 보면 지분은 34~50%로 제한되고 총수가 있는 자산 10조원 이상의 기업은 배제된다. 법이 통과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상당수 IT 기업들은 인터넷은행의 주인이 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첨병이 되기 위해서는 인터넷은행에 대한 제약조건을 더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36년 전인 1982년과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1980년대는 노동이 넘치고 자본이 부족하던 시대다. 제조업의 자기자본비율은 20.6%(1982년)에 불과했다. 2016년의 55.6%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기업의 자금조달도 과거처럼 금융대출 등 간접금융방식 비중은 줄고 있다. 회사채 발행이나 주식·기업어음 등 직접금융 조달 비중이 더 높다. 대기업은 현금보유도 넉넉하다. 그런데도 사슬처럼 엮여 있는 규제를 감내하고 금융을 소유해 사금고화할까.

현직 장관의 말이다. “자본이 넘치는 시대에, 변화를 읽지 못한 채 30년 전의 사고에 갇힌 채 금산분리를 바라보는 게 얼마나 소모적인가. 먼 산 보고 팔뚝질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진보진영의 주장이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fusioncj@sedaily.com

이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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