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발 금융위기 공포가 주요 신흥국은 물론 유럽으로까지 전이될 조짐을 보이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터키 경제가 취약한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제재까지 더해지면서 가속도가 붙은 ‘리라화 쇼크’는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자금유출 가시화로 가뜩이나 위태로운 움직임을 보여 온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아르헨티나 등 주요 신흥국의 연쇄 반응을 촉발하고 있다. 여기에 터키에 대한 거래 비중이 높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까지 악영향이 미치기 시작하자 시장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는 모습이다.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10일 터키 리라화 가치는 한때 1달러당 6.8리라까지 추락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리라화 가치는 연초대비 40% 이상 빠져 는 아르헨티나를 제치고 주요 신흥극 가운데 가장 최대 낙폭을 보이고 있다.
외신들은 경상수지 적자 등 심각한 터키의 경제상황이 환율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는데다 터키 정부의 외환보유 부족으로 환율개입 여력도 부족하다며 리라화 방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터키 중앙은행에 따르면 지난 3일 현재 터키의 외환보유액은 1,029억달러(116조원)이며, 그나마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은 200억달러 정도다. 이렇다 할 대응책이 없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우리에게 경제전쟁을 선포한 자들을 향한 국민적 투쟁”이라며 갖고 있는 달러나 금을 리라화로 바꾸라고 호소하는 실정이다.
문제는 터키발 위기의 불길이 다른 신흥국으로 옮겨붙고 있다는 점이다. 10일 남아공 란드화가 1.5% 하락한 것을 비롯해 멕시코 페소화와 폴란드 졸티화도 각각 1% 이상 밀렸다. 라보뱅크의 제인 폴리 외환전략가는 “신흥국 통화가 연초부터 무역전쟁 리스크와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약세 흐름을 이어 왔는데 터키 사태는 여기에 악재를 보탠 셈”이라고 말했다. 터키발 쇼크에 놀란 투자자들이 달러화 자산으로 몰려 갈 경우 일부 신흥국들은 디폴트 위기에 직면할 우려도 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의 글로벌 어드바이저 마이클 아로니는 “안전자산으로의 회피 심리로 달러 강세가 계속되면 달러화 부채를 안고 있는 신흥국의 상환 능력에 악영향을 준다”고 경고했다. 다.
터키발 금융불안은 경제적 유대관계가 강한 유럽 경제마저 뒤흔들 가능성도 있다. 스페인의 경우 은행권의 터키 채권이 3월 말 현재 809억달러 규모에 달하며, 프랑스도 351억달러 수준이다. 터키가 해외에서 받은 직접투자 잔액은 지난 5월 말 현재 1,400억달러로 이 가운데 유럽국가 투자액이 75%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리라화 급락의 패를 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날 가능성이 없는 만큼 달러·엔 등 안전자산으로의 쏠림현상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샤합 잘리누스 크레디트수이스 그룹의 통화 전략 수석은 “1990년대 초 멕시코 페소 위기 때는 미국이 국제통화의 극심한 변동성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시장에 형성됐었지만 지금은 그런 가정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